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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Sep 13. 2024

어떤 하루

: J에게

 눈을 뜨고, 사랑하는 사람을 눈에 담는다.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마이크 선을 옷에 연결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망으로 묶는다. 빼먹은 것은 없는지 두어 차례 가방을 확인하고, 직장으로 향한다. 얼마 안 돼 눈에 들어오는 백화점 건물을 보며 나의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아쉬워하기도 잠시, 나의 정신없는 하루는 시작된다.


 고객이 떠난 테이블 위 널브러진 식기류를 치우고, 테이블을 셋팅하고, 음식을 나르고, 영수증을 챙겨 주문을 확인하고, 음료를 나르고, 접시를 닦고, 잠시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쉬다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러다 어느새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주섬주섬 집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    


 



 이런 평범함을 그리워했던 날이 있었어요. 그저 하루하루가 평범하기만 했던 순간들에는 몰랐지만, 여느 날과 같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네요. 사람 앞날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걸 제가 겪어보고서야 알아버렸으니. 그때는 이런 평범함이 어찌나 간절했는지 몰라요.     



 나는 종종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생각에 잠길 때가 있어요. 아쉬운 때로 돌아가 보자며 기억을 더듬자면 끝도 없이 과거로만 돌아가게 되어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지만요.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를 되짚어 보기도 해요. 그렇게 질문을 바꾸면 돌아가야 하는 순간들의 윤곽이 보여요.


 만약 내가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그랬다면 내 인생도 제법 평범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가지고 뒤돌아보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정말 별로지만 말이에요. 그중 가장 아쉬웠던 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자면 전 역시 학창 시절인 것 같아요.   



  


 난 여느 중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학생이었고,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란 걸 알아요. 단지 그들과 내게 차이가 있다면, 난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고, 그들은 모른다는 거죠. 그러니 그 아이들이 날 그렇게 괴롭힐 수 있었을 거예요. 난 등 뒤에서, 때로는 가려진 번호로 온 전화 속에서 수시로 욕을 듣고 때로는 계단에서 밀쳐지며 살아남아야 했어요.


 이 시기를 난 늘 지옥이라 칭했어요. 시간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숨죽인 채 기다렸고,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꽁꽁 숨겼죠. 남들은 다들 학창 시절이 그립다고 하는데, 난 그리웠던 적이 없었어요. 그 지옥을 견뎌 낸 나 자신이 대단할 뿐이에요. 그리고 더는 견뎌 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요.  


   

 선생님께서는 절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이렇게나 평범한 사람이었고 간절히 평범함을 갈구하고 있었어요. 왜 그날 저를 회유하셨나요. 나를 회유하여 사건을 덮고, 결국 문제가 크게 벌어지자 선생님은 제 반대편에 서서 절 깎아내리기 바쁘셨잖아요. 그럴 거면서 왜 그때 그냥 넘어가라고만 하셨나요.


 제 아픔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셨더라면, 제 편에 서 주셨더라면. 나라는 사람의 서사가 그때랑은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요. 나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저 남들처럼만 살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무언가를 묵인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했어요. 불의 앞에 참지 말고, 할 이야기는 하며 살자고. 요즈음의 제 하루하루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이 고단하지만, 대신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난 그거면 만족해요.     



 그래서 오늘은, 내가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그런 평범한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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