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에게
K에게
요즘은 바쁘다 못해 이러다 쓰러질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바쁘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던가. 없을 거야. 내 인생이 그날을 기점으로 뒤바뀌었듯, 내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져 있거든. 나를 쭈욱 지켜봐 온 너도 그 차이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지내다 보니 몸은 점점 망가져 가고, 어느 날 기침이 도저히 멎지를 않아서 병원을 찾았더니 폐렴이라고 하더라. 스스로 그렇게 약한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쯤 되니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멈추기에는 내가 가진 불안이 커서 이미 강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중이거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한 요즘이야.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드문드문 보여지는 네 소식을 보면 너는 언제나처럼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 오히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잔소리를 퍼붓기에 여념이 없었지. 내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남았을까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지.
너를 처음 봤을 때의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저 편안해지는 일이 나의 꿈이었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어. 그땐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다고나 할까. 뭔가 애써 되고 싶다기보단 정말 간절하게 편해지고 싶었다. 꿈이라는 것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자들의 특권이거든. 거기에 한해서는 난 철저하게 패배자였어.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때를 떠올리면 힘들지만, 오히려 복에 겨운 나날들이기는 해. 이제야 나도 꿈이라는 걸 꾸고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 일들을 발판 삼아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까지 가지고 있고. 제법 낭만적이지. 내 목표 대부분은 일이나 학업 따위에 치중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되게 재미없는 꿈을 꾸는 듯 보이기도 하겠지만, 뭐 어때. 난 재미있고 흥미로운걸.
그런데 가끔 나는 길을 잃고 자신에게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묻게 돼. 더이상 나의 꿈에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그토록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그 바쁜 일상에서 사람과 어우러질 시간은 자꾸만 줄어들고, 그렇게 놓아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되고 있어. 사람보다 꿈이 더 커지는 모습이 내게는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거든.
나는 그렇게 너를 놓았다. 내 꿈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넘어가자,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건 너 하나밖에 없었어. 그런데 지금도 질문은 반복되고 있어.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끊이지 않는 기침 속에서, 점점 지쳐가는 몸을 느끼면서 나는 자꾸만 생각에 잠긴다.
오늘도 난 똑같은 질문을 안고 하루를 살아가겠지. 더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내 꿈이라는 미래를 들여다보며, 정말로 이게 맞는 걸까. 그러면서 난 결국 온전히 쉬지 못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을 거야.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고, 서류를 만들다가 기절하듯 잠들겠지.
새벽이야. 하루의 끝인 동시에, 또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도 고마웠고,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염치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