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4
손글씨가 빼곡한 성경을 마주하면 나도 마음이 가만히 가라앉는다. 여백마다 적힌 기록들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의 주인이 보냈을 수많은 새벽과 밤의 무게가 손끝으로 전해진다. 성경 리폼은 단순히 가죽과 종이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어 낡아버린 성경일수록 책의 형태가 변형되어 있기 마련이다.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낱장들이 흩어지지 않게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낡은 가름끈과 꽃천을 떼어내고, 의뢰인이 요청하셨던 지퍼가 있는 디자인에 특별히 YKK 지퍼를 골라 달았다. '오래도록 쓰시라'는 나의 작은 배려이다. 장식적인 화려함보다는 매일 손을 타는 물건으로서의 견고함, 그 본질에 집중하고 싶었다.
나의 일은 낡은 추억이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든든한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새로워진 이 성경을 펼쳤을 때, 그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본인의 손글씨를 보며 의뢰인이 옅은 미소를 짓는 것을 상상하며, 공방장의 하루도 미소로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