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걷는다. 이 길 위에서 진짜 나를 만난다. 참나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글로 써본다.
내가 처음 걷기를 시작한 것은 5년 전이다. 그 당시, 새온독이라는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많은 책에서 걷기를 추천하는 내용이 많았다. 40대 초반에 접어든 나는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다이어트를 할 목적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동네공원을 걸어보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매일 차로 지나가다 보는 공원이 새로웠다.
울창한 나무들, 오밀조밀 피어 있는 들꽃들, 여유 있게 날아다니는 새들, 찌릿찌릿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그동안 보지 못한 보석들이 반짝이며 나를 반겨줬다.
그렇게 하루이틀 걷기를 하다 보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 같다. 그래서 며칠 씩 걷기를 안 하기도 했다. 그래도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화 끈을 조이곤 했다. 그냥 걷는 것에 싫증이 난 나는 음악도 들으며 성경 구절도 외우며 가족들과 통화도 하며 걷기를 이어나갔다. 걷기는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몸짓이자, 취미가 되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며 나의 루틴이 된 걷기는 무채색이었던 내 삶을 유채색으로 바꿔 놓기 시작했다.
우선, 걷기가 효자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른 아침시간에 걷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에 여유 있게 통화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엄마, 장인어른, 장모님, 외삼촌뿐이다. 모두 은퇴하시고 특별한 일정이 없는 분들이다. 그분들께 전화를 드리면, 한결같이 반갑고 여유 있게 받아 주신다. 안부를 여쭙고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면, 일이십 분이 후딱 지나간다. 이런 전화통화가 쌓이고 쌓여 한 인간으로서 그분들을 알아가게 되었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더 많이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 주신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허들의 연속인 것 같다.. 친구한테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주식이 폭락할 수도 있다. 결국 이 허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다.인생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나에겐 걷기이다.
나의 두 번째 걷기의 쓸모는 생존전략이다. 얼마 전 치밀하게 조작된 금융사기의 덫에 걸렸었다. 영끌한 대부분의 투자금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가족의 미래를 담보로 빌린 돈이다 보니, 눈앞이 깜깜했다.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느껴졌다. 최악의 경우도 상상하게 되었다. 그때, 나를 구원해 준 것이 걷기였다. 의기소침해서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내게 갑자기 든 생각이 다시 걸어보자. 다시 살아보자였다.
오랜만에 나온 나를 하늘과 구름과 강물과 들꽃과 잠자리와 새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깜깜했던 마음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지금의 암담한 상황이 아닌, 풍요로운 미래가 마음속에 그려졌다. 과거의 잘못이나 미래의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충만하게 현존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걷기를 통해 금융사기로 인한 상처를 조금씩 조금씩 치유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작가로서의 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걷기는 나에게 구세주가 되어주었다. 앞으로 수많은 허들이 내 앞길을 막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걷기라는 비밀병기가 있기에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