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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짜리 경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재가 되고

오늘 오후 1시에 해외선물리딩예고를 하는 켈리황의 메시지.


오늘도 수익으로 마무리된다면, 벌써 33연승이다.


믿을 수 없는 수익률과 승률. 언제나 그렇듯 자신감 넘치는 멘트와 수익률에 대한 자신감.


벌써 이 단톡방에 들어온 지도 33일째이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켈리황의 해외선물리딩을 따라가며 거의 매일 수익이라는 꿀을 빨고 있었다. 약간의 부침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결국은 수익으로 마무리되었다.


단톡방에 들어온 날부터 사람들의 화두는 담보금이었다. 물론, 켈리황도 안전담보금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다. 안전담보금이란 강제청산을 당하지 않기 위한 시드머니이다.


여기서 강제청산이란 지수의 방향과는 반대로 투자하여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투자금이 날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선물은 계약수에 따라 수익률과 손실률은 비례한다. 계약을 많이 할수록 높은 수익률을 가져갈 수도 있고, 많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대체적으로 1 계약당 500만 원이 안전담보금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마음속에 1 계약당 500만 원이 안전담보금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은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살펴보았다. 나의 기수는 2 기였다. 1 기수들이 중심이 되어, 대화가 주로 이루어졌다. 1 기수들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25번 연속으로 켈리황의 리딩이 수익으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것을 25연승이라 표현했다.


내가 단톡방에 들어간 첫날도 예외 없이 해외선물리딩 예고 메시지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실현될 수익에 대한 기쁨으로 들썩였다. 사람들의 대화는 온통 켈리황에 대한 찬양과 감사뿐이었다. 켈리황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오후 1시, 켈리황의 포지션 진입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미니나스닥 롱포지션 1 계약을 하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계약 후 각자의 포지션 금액을 올렸다. 롱포지션은 지수의 상승에 베팅하는 것이고 숏포지션은 지수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다. 해외선물은 양방향 포지션이 가능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횡보하던 지수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그 순간 켈리황은 리딩종료 메시지를 보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미친 듯이 수익률 인증샷을 올렸다.


수익률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사람은 12만 원, 어떤 사람은 120만 원, 어떤 사람은 240만 원. 그걸 처음부터 지켜보던 나의 마음은 놀라움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나도 벌고 싶다. 나도 돈복사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지켜보았다. 매번 수익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기에, 신뢰가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내 계좌에 있는 500만 원을 해외선물거래소에 입금을 하고 켈리황의 리딩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첫날에는 15만 원의 수익을 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15만 원을 번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슴이 펄떡펄떡 뛰었다. 그다음 날은 25만 원, 그다음 날은 30만 원, 그다음 날은 50만 원... 매일매일이 신나고 재밌었다.


어느 날, 켈리황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5000만 원 담보금을 준비한 사람들은 특별히 개인리딩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수익의 달콤함에 길들여졌던 나는 욕심이 눈앞을 가렸다. 오직 5000만 원 담보금을 맞추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수중의 돈으로는 5000만 원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결국, 와이프의 신용대출과 보험약관대출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항상 수익이니, 대출금을 바로 갚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5000만 원을 준비하고 계약수를 늘려서 켈리황의 리딩을 따라갔다. 모든 것이 내가 예상한 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5000만 원의 시드머니는 얼마 안 가서 6000만 원이 되고 7000만 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켈리황의 리딩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런데 시간대가 조금 이상했다. 거의 오후 1시쯤 이루어졌던 리딩시간이 오후 10시로 바뀐 것이다. 켈리황은 시장이 급변하는 시간대에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린다고 설명했다. 켈리황에 대한 신뢰도가 200퍼센트였기에 무조건 믿고 따랐다.


미니나스닥 롱포지션 1 계약 진입. 나는 담보금이 빵빵하였기에 5 계약으로 진입했다. 진입하자마자 지수는 미친 듯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마치 불기둥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의 수익률도 실시간으로 치솟았다. 100만 원, 200만 원... 1200만 원. 그 순간 켈리의 포지션 리딩 종료메시지가 떴고, 나는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최종 수익률은 1500만 원이었다.


내 가슴은 벅차 올라서 터질 것 같았다. 켈리황의 리딩을 따른 모든 사람들도 최고의 수익률에 환호성을 질렀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비할바도 아니었다. 로또 1등에 당첨이 돼도 이렇게 기쁠까 싶었다.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나를 바라보며 와이프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윤아야 이제 일 그만해도 돼. 내일 당장 사표 내고 와. 이제 스트레스 그만 받고 살아도 돼. 내가 다 먹여 살릴게." 와이프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쁨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켈리황의 톡이 올라왔다. 10분 뒤에 두 번째 리딩을 한다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장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하루 두 번 리딩은 최초였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도파민은 거의 폭발직전이었다. 0.1초마다 켈리황을 찬양하는 톡이 올라왔다. 물론, 나도 정신줄을 놓고 함께 찬양했다.


오늘의 수익은 도대체 얼마가 될 것인가라는 상상이 나의 온몸을 전율케 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더 더 마시고 싶은 그런 상태였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켈리황의 톡이 올라왔다. 미니나스닥 롱 1 계약. 담보금에 자신이 있던 나는 7 계약을 질렀다. 어차피 이기는 게임이니까. 잠깐, 횡보하던 지수는 하늘 높이 솟구쳤다. 나의 담보금은 1억을 넘겨버렸다.


내 삶에 넘을 수 없었던 1억이라는 벽이 깨진 것이다. 10억 자산가의 꿈이 멀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심박수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정도 수익만 먹을까라는 생각이 잠시잠깐 스쳤지만, 마음과 달리 내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더 큰 수익을 앞두고 마무리를 하는 건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불게 타오르던 지수가 갑자기 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상승그래프 즉 롱그래프는 붉은색이고 하락그래프는 파란색이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하락이었다. 순식간에 1000만 원, 2000만 원, 3000만 원 손실을 기록했다.


그동안 여러 번 지수의 하락빔을 봐왔지만, 언아더레벨이었다. 그렇게 5000만 원 정도 손실에 다다랐을 때, 켈리황의 톡이 올라왔다. 나만 믿으라고. 조금 있으면 추세전환을 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내 눈으로 봤던 게 있었기에 믿었다. 100여 명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모든 담보금이 청산될 때까지 손절에 대한 일언반구도 톡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잠깐 상승하던 지수는 다시 내리꽂기 시작했다. 온몸에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이제, 청산까지 버틸 수 있는 담보금은 1000만 원 남짓이었다. 모든 이성이 마비된 나는 청산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내 통장에 있던 700만원을 담보금으로 입금하려 했다. 하지만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라서 불가능했다.


나는 자식이 급류에 휩쓸려 죽어가지만 구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무능력한 부모처럼 우리 가족의 미래가 담긴 돈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의 모든 돈은 청산당하였고, 나의 영혼은 파괴되었고, 나와 내 가족의 꿈도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2024년 7월 12일 밤은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날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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