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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삶 2

메멘토모리

오늘도 내 손에는 끝이 몽글몽글하고 얇고 긴 나뭇가지가 들려있다.

산책길 겸 자전거도로를 목숨 걸고 횡단하는 지렁이와 민달팽이의 생명연장을 위해서 항상 휴대한다.

강변코스로 산책로를 바꾼 이후로, 지렁이와 민달팽이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경우보다는 자전거와 사람의 발에 밟혀 몸의 어딘가가 터져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죽기 위해 사는 생명체는 없다.


분명, 살길을 찾아가는 길일텐데, 결과는 황천길이다.

끈적임 때문에 손으로 만지기에는 뭔가 찝찝했던 나는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풀숲으로 옮겨준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5마리 정도의 생명을 살려주는 것 같다. 그동안 1000마리 이상 살려준 것 같다. 새 생명 전도사로서 어깨뽕이 솟아오른다.

모든 생물은 오늘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죽어가기도 한다.

단지, 빨리 죽느냐, 천천히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떤 사람들은 죽을 확률이 높은 모험을 즐기다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하다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급발진한 차량에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병으로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노환으로 죽기도 한다.

죽음은 누구나 공평하게 한 번씩 겪게 된다.


또한 죽음은 꼭 있어에 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불멸의 인간에 대해 버나드 윌리암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모든 목적을 이룬 후, 삶의 동력을 잃고 영원의 시간을 무료함 속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전가한다. 살고자 하는 것인지, 죽고자 하는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

물론, 살다 보면 피치 못 할 사정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나의 한번뿐인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용서 못 할 일도, 사랑 안 할 일도 없다.

엔드오브타임이란 책에는 재미있는 질문이 있다.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1년 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로 인류가 멸망하는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1년 뒤에 죽을 것인가.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전 세계인과 함께 죽는다면, 외롭거나 억울하거나 아쉽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나의 자식을 포함한 미래세대가 다 죽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아직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할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해야 현재를 충실히 살 수 있다. 언젠간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지금, 여기에서, 함께 있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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