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간 갈등 불씨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오해이다. 오해는 습관이다. 넘겨짚기병에 걸린 사람들의 똥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오해의 흔적이 어디든 남아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누군가 나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하는지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산다. 나의 말을 듣고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본심을 숨기고 가식으로 한 행동을 상대가 눈치챈 걸까? 나 몰래 뒷담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꽁꽁 숨기고 있는 약점을 들킨 게 아닐까? 내 의도와는 다르게 와전된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오해는 오감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결과다.
오해의 깊이와 폭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과학적 통계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타인에 대해 무딘 사람이 민감한 사람보다 행복할 수밖에 없다. 무딘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가끔 타인에게 시선도 주지만 가볍다.
우리 공부방에 얼굴도 예쁘고 옷도 메이커만 입는 지율이라는 아이가 있다. 거의 매일 울상을 하며 공부방에 들어온다. "선생님, 오늘은 기범이가 못생겼다고 놀렸어요. 속상해서 짜증 나요." "선생님, 교실 게시판에 누군가 내 얼굴을 이상하게 그려놨어요. 너무 화나요." 매번 이런 식이다. 누군가 자기에게 자갈을 던지면, 돌로 바꿔서 내리찍는다. 누군가 자기에게 화살을 쏘면 그 화살을 뽑아서 자기 가슴에 계속 쑤셔 박는다.
공부는 고사하고, 수업시간 내내, 엄마나 선생님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억울함과 화가 남을 설명하고 인정받기를 갈구한다. 수십 번 반복되는 상황에 내 입은 저절로 다물어진다.
우리 공부방에는 얼굴은 지극히 평범하고 고도비만이며, 옷도 수수하게 입고 다니는 다현이라는 아이가 있다. 분명히 놀림을 많이 당할 외모인데,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억울해하거나 짜증스러워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지우라는 아이와 다투게 되었다. 원인은 다현이가 가지고 있던 원숭이 인형을 지우에게 빌려주지 않아서였다. 지우는 앙칼 맞은 목소리로 "돼지 같이 살이 뒤룩뒤룩 쪄서 욕심만 가득한 바보."라고 놀렸다.
그다음 상황이 참 놀라웠다. 다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공부에 몰두했다. 경험상, '분명히 다현이가 욕을 하거나 나에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되는데. 초등학생이라면 참을 수가 없는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묵묵히 밭을 가는 소처럼 다현이는 문제집을 풀었다.
나는 너무나도 궁금해서 다현이에게 물었다. "다현아, 지우가 욕했는데, 화가 안 나니?" 다현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참을 수 있을 만큼 조금 화나요. 그런데 금방 괜찮아요."
나는 다현이의 대답을 듣고 '다현이는 자신을 살리는 귀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상대방이 돌을 던지던 화살을 쏘던 그냥 맞고 버리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아픔도 짜증도 들어올 자리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영자와 김성령이 함께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영자는 수십 년 연예인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오해로 스트레스가 너무나 심해서 밤마다 폭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했다. 그 말은 들은 김성령은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내 욕을 했는데도, 그게 내 욕인 줄 모르다가 몇 년 뒤에야 알았어. 나는 되게 무딘 것 같아."
이영자와 김성령의 영상을 보며, 나를 살리는 귀를 갖고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를 죽이는 귀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미움받을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무뎌진 연필심처럼 둥글둥글 살 필요가 있다. 타인의 시선에 선글라스를 씌워 줄 필요가 있다. 나의 건강한 현존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