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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삶 5

머리 대신 손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머리가 없으면 팔다리가 있다.



같은 상황, 다른 해석, 극과 극의 결과.

전자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말이고 후자는 프랑스에서 널리 쓰는 말이다.

어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극과 극이다. 되느냐를 보는 것과 되지 않느냐를 보는 것은 나의 선택이지만, 그 결과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 결과의 책임도 나에게 있다.

결국, 상황이 나의 긍정과 부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시선이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동물이다. 수렵채집시대, 생존전략 증 가장 핵심은 부정이었다. 가장 생존에 유리했던 사람은 초부정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누구보다 앞서서 탐사를 나서거나 도전을 했던, 조상들은 대부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부정은 세대를 거치며 더욱 강력하게 우리들을 묶어왔다. 먹던 것만 먹고, 살던 곳에만 살고, 입던 옷만 입구, 만났던 사람만 만나고, 갔던 곳만 가고...


변화는 곧 죽음이라는 인식이 유전자에 흉터처럼 새겨져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지금은 생존의 줄타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역사적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안전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제 수업시간이 10분 남았다. 힘내서 마무리 잘하자."

"10분이나 남았잖아요. 힘이 안 나서 시간 그냥 때울래요."

긍정과 부정은 돌고 돌지 않는다. 어제 부정적이었던 아이는 오늘도 부정적이고, 오늘 긍정적이었던 아이는 내일도 긍정적이다.

우리가 꼭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사람 옆에는 사람이 없다. 내가 혼자 있기를 죽어도 원한다면, 살던 대로 살면 된다.

히지만,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고 서로 사랑하고 싶으면,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긍정적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과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좋게만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기준과 믿을 만한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서 냉철한 이성을 근간으로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무시할지를 선택하면 된다.



굳이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부정이 낄 필요는 없다.



사람이 일정기준에 맞지 않으면 손절하면 되고, 상황이 그렇다면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한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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