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Jun 01. 2019

무례했던 말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로 향하는 길, 마주치는 사람보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눈송이가 더 많았던 겨울의 나라엔 여행자가 드물다. 내리는 눈송이를 멍하니 바라보자니 뭔가 끈적한 기분이다. 눈송이가 녹아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에게 스며드는 느낌. 그것들이 내 안에 단단히 엉겨 풀어져야 할 마음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면 서있는 장소가 바뀔 테지만 사실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서있는데 내 뒤의 배경만 뀌는, 그만큼 별 다를 것이 없는 하얀 세상의 긴 줄이 내 뒤로 흘러갈 뿐. 조금은 딛고 있는 발에 힘을 주어 보려 해도 무언가 자꾸만 안으로 깊숙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모두 다 하늘을 가득 메운 눈송이 때문이리라. 운이 좋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한 사람쯤 만나 내 앞에 세워두고 쌓아두었던 마음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얗기만 한 세상에 조금은 짙은색 발자국을 찍어보고 싶은 심술이다.



예매를 하지는 않았지만 버스의 자리는 여유로웠다. 자리는 하나 둘 금빛 머리에 파란 눈동자의 사람들로 채워진다. 겨울이라는 하얀 배경 위에 이들과 다른 내 검은색의 머리는 도드라졌다. 애써 숨겨보려 몇 번인가 몸을 움츠려 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목적지에 도착해있길 바라면서. 그런데 어딘가에 도착한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까? 먼 곳에서 보내는 쌀쌀한 마음은 도무지 데워지지가 않았다.

어딘가로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여행이 충분하게 채워졌던 때가 언제였는지. 어느샌가 그런 감흥은 두껍게 쌓인 눈의 맨 아래층처럼 단단히 얼어버렸다. 아무것도 받아내지 못했고, 어떤 것도 흘려보내지 못했다.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의 순간처럼 지금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랐다. 무감각해진 감흥만큼이나 조금은 지쳐있었는지도. 지쳐있는 마음은 무언가를 껴안을 여유도, 무언가 통과시킬 겨를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웅크려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 바둥댈 뿐.



얼마간 잠이 들었을까. 도로 위에 쌓인 눈에 반사되어 눈을 간지럽히던 햇빛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여정의 절반쯤이 지나가 있었다. 나는 이미 달아나버린 잠을 다시 붙잡아두는 건 포기하고는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무료한 시선이 창 밖의 세상에 닿았다. 무딘 마음으로 바라봤지만 풍경은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눈으로 뒤덮인 길과 나무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 작은 집들. 그리고 그 안의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 까지. 겨울의 계절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도 새로운 풍경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우리나라의 제설작업의 속도와,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엔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나는 내 나라의 겨울에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 남은 여정을 눈부시게 하얗기만 한 풍경으로 채워보자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세요?"

나의 대각선 자리의 남자였다. 그러니까 내 앞자리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깊게 눌러쓴 남자의 모자 때문에 몰랐었는데 모자를 벗은 남자의 머리색이 나와 같은 검정이었다. 남자는 아마도 내 검정 머리를 보고 내가 한국이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네. 한국사람입니다. 혹시 한국사람이세요?"

남자의 외모는 한국사람 같았지만 그의 한국어가 약간은 어눌했기 때문에 나는 되물었다.

"아니요. 키르기스스탄 사람입니다. 그런데 피는 한국인입니다. 고려인이에요."

남자는 내가 반가웠는지 몸을 내쪽으로 돌리더니 본격적으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비자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지금은 잠시 다른 일자리를 찾아 리투아니로 가는 중이라고. 남자의 한국어가 다소 서툴러 느리긴 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사실 내가 그가 건네는 말들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가 않았다. 단어와 단어만이 연결된 조금인 빈약한 말들이었지만 그래도 한국말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처음 듣는 반가운 한국말이었으니까. 반대로 그는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짧은 영어로 외국인과 이야기할 때 상대희 표정을 세심히 살펴 겨우 이해하던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살아있는 생동감이 있었고, 반대로 내 대답은 무심하게 짧기만 했다. 게다가 그는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했다. 남자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소중히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간직한 채 그것을 등에 짊어지고 열심히 삶을 살아내는 모습도 내 아버지와 비슷했다. 투박한 옷차림이, 거친 손이, 진심을 말할 때 깊어지던 그 눈빛 까지.

그런 그가 건네는 존댓말 앞에 내 짧은 말들이 무례했을 것이다. 한국에도 겨울이 있고 한국의 겨울도 이곳 만큼이다 춥다는 말도, 한국말을 잘하신다는 말도, 리투아니에 가면 무슨 일을 할 거냔 말도, 한국에 꼭 오길 바란다는 말도 그가 진심을 담아 열심히 건넨 말들 앞에서 모두 무례해져 버렸다.

진심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간절한 무언가를 찾아 버스에 오른 그와 어떻게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내 마음가짐의 차이다. 먼 옛날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을 핏줄의 작은 근거로 크게 기뻐했던 그의 순수한 마음과 지척의 그조차 담아내지 못했던 내 작은 마음.  그 마음들이 말들에 배어있었으므로 차이는 극명해진 것이다.



"아프지 말고 여행해요. 감사합니다."

버스는 빌뉴스에 도착했고 남자는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섰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아무 말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왜 이리도 뻣뻣할까. 무엇을 얼마만큼 가졌기에 이리도 무례하기만 할까. 틈조차 보이지 않으려 빽빽하기만 했을까.


눈 앞의 세상은 여전히 무거운 하얀색이었고, 난 어떻게든 여행을 이어야 할 것이다.

같은 길 위였지만 그의 길과 내 길은 온도 자체가 달랐다. 그는 단단히 길을 걸었고, 난 영영 채우지 못할 허기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한 걸음조차 쉽게 떼지 못했다.

조금은 고단할지라도 그래도 간절하고 충실한 길들이 그의 앞에 있을 것이다. 하얗게 내리던 눈은 그렇게 다른 온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하고 견고한 대지_로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