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Apr 05. 2018

돌고 돌아 제자리

공항에 가는 길

공항엘 자주 간다. 

비행기 티켓조차 없으면서 그래도 자꾸만 설레는 마음에 차의 조수석 사물함에 항상 여권을 넣어두었다. 일종의 위안이자 발버둥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버거운 현실에 여권을 한 번 꺼내어 바라보다가는 까짓것 그냥 가서 밥만 먹고 오지 뭐, 라는 생각으로 나는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공항의 표정을 보러 가기도 하고, 공항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기도 한다. 당장 내가 떠나지는 못하지만 떠나는 이의 설렘을 엿보고 싶다. 그렇게라도 그들의 표정에 내가 옮고 싶다. 한 시간쯤 인천 공항 3층 출국장에 앉아있다 돌아오면 그래도 얼마 동안은 일상이 괜찮아지곤 했다. 


 

3층 출국장의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본다. 시선에 들어온 그들이 부러웠다. 시기한다. 그러다가 떠나고 있는 그들이 결국 미워지기까지 한다. 당장이라도 출발 가능한 가장 바른 비행기 티켓을 사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 깊숙이부터 인다. 못났고 이기적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자주 난 반대의 상황에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설렘을 안고 어딘가로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내 자리,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누군가는 떠나는 나를 바라만 봐야 했었을 텐데. 어린아이 같다. 심술 가득한 어린아이. 


마음의 허기에 옮아버렸는지 배가 고파졌다. 햄버거를 먹을 요량으로 1층의 입국장으로 내려갔다. 사실 1층의 입국장은 항상 나에게 힘든 곳이었다. 그곳은 여행의 여운이 끝나버리는 곳이기도 했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잔인한 세상의 입구였다. 출국 때보다 짐은 가벼워졌지만 곱절은 무거워진 마음이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눌렀던 곳. 그래서 수없이 지나왔지만 한 번도 뒤 돌아보지는 않았던 곳이었다. 



햄버거를 먹으며 입국장을 바라봤다. 먼 곳으로부터 돌아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여행이었든 일이었든 끝나버렸기 때문에 아쉬울 테지.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겠지. 입국장이 건네는 이야기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길 바라겠지. 

내가 몇 번이고 그런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쳤었기에 그들도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며 가여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걸. 돌아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도착해버림에 아쉬움이 아니라 묘한 설렘을 안고 있었다. 나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웃음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반기는 따듯한 마음들이 그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아... 떠남이 주는 설렘도 있겠지만 돌아옴이 주는 설렘도 있겠구나. 지금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설레는 웃음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껏 반쪽짜리 여행을 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나는 것도 여행이고 돌아오는 것도 여행 이리라. 그건 입국장의 웃음 가득한 수많은 사람이 증인이다. 공항의 표정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공항에서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나 같은 사람도 이제는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잘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이 욕심이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별 것 아닌 일에 하루 종일 행복할 때가 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는 수건에서 풍기는 섬유유연제의 향기 때문에 남은 하루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신호등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괜스레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뿌듯해하기도 한다. 당신의 옆자리가 비어있어 설레기도 하고, 이발이 예쁘게 되어 거울을 자주 보게 되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이 쌓여 충만함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삶에 쌓인 충만함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행복으로 견고해진 삶의 표정은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같을 수 있는 것이다. 담뿍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공항의 출국장과 입국장, 두 곳 모두 설렘이 가득한 것처럼. 



이제 많은 욕심들은 사그라들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가는 사람. 사랑을 하는 일도, 돌아서는 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