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다음 날 나는 6시 30분에 잠에서 깼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핸드폰 알람이 정확히 두 번 울리자 나는 건전지가 가득 차 있는 장난감처럼 어김없이 눈을 뜬 것이다. 오늘이 토요일이지만 이러한 습관은 쉽사리 몸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습관이란 건 때론 고맙기도 하고 때론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마운 쪽인 것 같다. 어쨌든 습관이라는 게 몸에 자리 잡으려면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한 번 각인된 것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으니까. 이왕 몸에 자리 잡은 것이고, 거기에 내 노력까지 더해졌다면 고마운 쪽이 좋은 것이다.
잠이 깬 뒤에도 한동안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냥 누워있었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출근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런 시간을 좋아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천천히 내 몸에 감각을 집중시킨다. 손가락을 까딱 거려 보고 발가락을 움츠려 보기도 한다. 내 의지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내 몸을 확인하는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켜고 그 호흡의 하나하나를 남김없이 몸의 곳곳으로 보낸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벌써 아침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내 몸에게 전하는 것이다. 뭔가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들에게 당연한 응답을 받는 것이 나에겐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나는 소리의 집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어제 술을 마시다 그만 소리 집에서 잠이든 것이다. 창을 통해 들어온 따듯한 아침 햇살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나는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정말 맥주를 많이 마신 것이다. 내 몸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수분이 가득했고 얼른 그걸 배출해야만 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제는 술에 취해 단편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던 소리 집의 모습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묘한 기분이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거실은 단순했다. 그 흔한 티브이도 없었다. 널찍한 소파와 작은 나무 테이블 그리고 벽 하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는 책장과 책장에 꽂혀있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전부였다. 단순하면서도 특징이라곤 없는. 우리 집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한참 거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소리가 눈에 들어왔다. 소리는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유난히 더운 봄이긴 하지만 새벽에는 제법 쌀쌀했는지 소리는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새근새근 코로 숨을 내쉴 때마다 작은 소리의 몸이 가볍게 일렁였다. 무언가 맛있는 걸 먹는 꿈이라도 꾸는 듯 소리는 마른 입을 몇 번인가 오물 거리기도 했다. 술을 적당히 마셔 조금만 제정신이었더라도 아마 소리를 침실에 데려다주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좀 더 자세히 잠을 자고 있는 소리를 바라봤다. 소리는 아무런 프린트도 되어있지 않은 조금은 헐렁해 보이는 하얀 식 긴 팔 티셔츠에 까만색 스키니 바지를 입고 있었다. 작은 발에는 도날드 덕이 그려진 귀여운 노란색 양말을 신고 있었고 손목에는 까만색 머리끈이 두 개 채워져 있었다.
예쁜 얼굴이야,라고 나는 생각했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기 때문에 채 화장을 지우지 못한 얼굴이었다. 연하게 화장이 조금 번져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예쁜 얼굴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소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만났던 곳은 전부 집 앞의 바였고, 그곳의 약간은 어두운 조명은 소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엔 다소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항상 취해 있거나, 취해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맑은 정신에 밝은 곳에서 바라 본 소리는 상당히 미인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여자 아이돌 가수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겐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저런 얼굴이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바라만 봐도 전혀 질리지가 않을 것이다.
소리의 얼굴을 그렇게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한번 신호가 왔다. 소변이 마려웠다. 문득 어떤 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방광의 용량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라고 했다. 요즘 길어지고 있는 영화의 러닝타임에 관한 불만 섞인 표현이었을 테지. 나는 가득 차있는 내 방광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미인의 얼굴을 보는 즐거움도 방광의 용량을 시험해서는 안된다,라고.
나는 화장실을 찾느라 좀 고생을 했다. 소리의 집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안방 문과 작은 창고 문을 열어본 뒤에야 겨우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잘 버텨준 나의 방광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내 방광의 용량이 상당하다는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혹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생긴다면 ‘남들보다 유난히 크고 인내심이 많은 방광’을 장점을 적는 칸에 꼭 적어 넣을 것이다, 라는 황당한 생각을 하며 나는 소변을 보았다.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보자 내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묘하게 어색했다. 그건 화장실 조명이라던지 거울의 위치가 우리 집의 그것과 달라서일 것이다.
다시 한번 내가 소리 집에서 잠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남의 집에서 잠을 잔 것은.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 마셨다. 소변을 배출하고 나니 이번엔 갈증이 났다. 어제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소리가 “이게 이제 정말 마지막 술이에요. 우리 집엔 더 이상 술이 없다고요”라고 말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정말로 냉장고에 더 이상 술은 없었다. 그러니까 어제 우리는 정말 “마지막” 까지 술을 마셨던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잠에서 깼다.
소리는 속이 불편한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이 왜 거실에서 잠을 잤는지, 그리고 지금 왜 이렇게 속이 좋지 않은지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어제의 일이 생각이 났는지 맞아,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거실 바닥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다시 한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던 그녀는 어제저녁 나와 함께 술을 마신 것 까지 기억이 나자 모든 게 확실해졌다는 듯 기지개를 크게 켰다. 생각의 흐름이 얼굴에 모조리 드러나는 그런 투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저씨 잘 잤어요?” 하고 소리가 나에게 물었다. 소리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가지런히 정리하더니 손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으로 야무지게 묶었다.
“응. 물론 어떻게 잠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말이야.” 나는 머리를 묶는 소리를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오늘 아침은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사실 나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아지써기 별 일 없이 잘 잤다는 건 어제 내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나마 다행이네. 내가 정말로 술에 취하면 사람을 물어뜯거든요. 정말로 개처럼요. 아저씨 괜찮죠?”
“아마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잠시 내 몸을 살펴봤다. 다행히 소리에게 물린 자국은 없었다. 사실 물렸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어제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죠?” 그녀는 거실에 널려있던 빈 맥주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까지 입에서 술냄새가 나. 정말 어제는 진탕 마셨나 봐요.”
“정말 많이 마셨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소리도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면 대충 알게 될 거야. 어제 얼마나 마니 마신 건지. 정말 어마어마해.” 나는 정말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풉. 웃겨요 아저씨. 그럼 난 어제 얼마나 술을 마신 건지 확인하러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소리가 그렇게 말하고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난 소리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가녀린 뒷모습엔 조금은 선명해진 작은 당당함이 있었다.
“아저씨 배고프진 않아요?”
화장실을 다녀와 부엌으로 향한 소리는 냉장고를 뒤지며 거실에 있는 나에게 물었다.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아. 그리고 난 아침은 원래 잘 안 먹거든.”
“그래요? 그래도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엔 뭐라도 든든히 먹어야 할 텐데...” 소리는 몇 번인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잠시만 기다려봐요.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줄 테니.”
“정말 괜찮은데.”
“아저씨. 그럴 땐 고마워,라고 말하면 돼요. 알겠어요? 자, 해봐요. 고맙다고.” 소리는 마치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엄마처럼 양 팔을 옆구리에 올리고선 자뭇 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뭐, 고마워.” 나는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뭐’라는 말만 빼면 더 완벽할 텐데 말이죠.”
“미안.”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고마워. 정말로.”
소리는 그럼 좋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배우는 걸로 하죠,라고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토스터기에 빵을 굽고 달궈진 팬에 베이컨을 구우면서 소리는 계속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런 소리를 바라보고 있지나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내 작은 불안의 씨앗이 떠올랐다. 이런 작은 행복은 내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냈으니 언젠간 이것만큼 아니, 이것보다 더 불행해질 거란 생각. 지금의 작은 행복감은 더 큰 불행을 가리기 위한 미끼 같은 거라고.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뒤덮더니 스멀스멀 번져나가 소리까지 뒤덮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많은 걸 가져본 적 없는 삶이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게 아쉽거나 슬플 만큼 가져본 적이 나는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은 누려도 된다. 이 정도는 괜찮은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소리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사이에 나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릴 준비를 했다.
바싹 구워지는 빵 냄새와, 커피 향이 은은하게 부엌을 가득 채웠다. 이내 나의 불안감도 사라졌다.
소리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내왔다.
“자, 먹어요. 맛은 자신 없지만 그래도 그나마 있는 재료들로 최대한 열심히 만든 거야.”
소리는 다소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샌드위치는 맛이 훌륭했다.
“맛있어. 무척이나. 정말이야.”
나는 샌드위치를 날름 먹어 치웠다.
우리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내고 집안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부엌과 거실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빈 병들과 캔, 그리고 접시들을 모아서 적당히 분리수거를 하고 나머지 것들은 설거지통에 넣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기로 했고 소리는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할 때는 정말로 이렇게 넓은 집 따위는 누구에게 줘 버리고 싶어요,라고 소리는 투덜거렸다.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을 깨끗이 정리했다. 거실로 돌아와 넓은 창을 활짝 열고는 환기를 시켰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커튼과 나를 스쳐 지나갔다. 상쾌했다. 소리는 이층에 올라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문득 소리방이 있는 2층이 궁금해졌다. 어제 술을 마시면서도 2층엔 올라가 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막 2층에 올라가기 위해 나무로 된 계단 쪽으로 걷고 있는데 마침 소리가 내려왔다.
“청소기는 분명 대단한 발명품이긴 해요. 금방 청소가 끝나버리니. 다만 시끄러운 건 역시 어쩔 수 없지만.” 소리는 청소기를 거실의 책장 옆 제자리에 가져다 놓며 말했다.
“정말 금방 끝냈네. 마침 2층 좀 구경하러 올라가던 참이었는데.”
“그만둬요. 2층은 지금 지옥이라고요. 대충 청소기만 돌리고 온 거야. 몇 달 동안 청소기만 돌리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큰 문제.”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열심히 정리를 하고 나서 한 번 초대할게요. 오늘은 안돼. 정말 아수라장 같단 말이에요.”
소리는 내 팔을 잡아끌고서는 나를 소파에 앉혔다.
“아저씨 오늘은 뭐해요? 토요일이잖아.”
소리는 대화의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
“음... 일단 집에 돌아가서 좀 쉬어야겠어. 노래도 좀 듣고. 책도 좀 읽으면서.”
“그게 다야? 주말인데 뭐 좀 더 특별한 일 없어요?”
“특별한 일?”
“응. 숨겨둔 불륜녀인 유부녀와 지방의 외딴 모텔에 간다던가, 평일엔 일 때문에 바빠서 보지 못했던 야동을 몰아서 본다던가, 아니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속옷을 훔쳐보기 위해서 육교의 계단을 오르내린다던가 그런 특별한 일 말이에요.” 소리는 말을 하면서 키득 거리며 웃었다.
“바보. 내가 그런 일을 할 리 없잖아.”
“왜요? 세상엔 서른 살 남자가 하지 못할 일 따윈 없다고요.”
“하지 못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유부녀와 모텔을 간다던가 야동을 본다던가 여자의 속옷을 훔쳐보는 일 따윈 안 해. 그런 건 서른 살 남자에게 시시한 일이라고.”
“우와. 그런 일이 시시하면 도대체 아저씨는 주말에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는 거예요?”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
“그게 뭔데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아무것도?”
“응. 아무것도.” 하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집에 있는 거야.”
“어제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저씬 정말 독특해요.”
소리도 소파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오더니 눈을 감고 햇빛을 쬐였다.
“아저씨.”
“응?”
“나는 사는 게 시시해요. 시시하고 시시해서 가끔은 미칠 것 같아. 밥을 먹는 것도, 노래를 하는 것도,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시시해. 그래서 맨날 술만 마시는지도 몰라요.” 소리는 나에에 팔짱을 끼고는 몸을 기대었다. “아저씨한테는 좋은 냄새가 나요. 함께 살았을 때 우리 아빠한테 나던 냄새랑 비슷해.”
“내가 사는 것도 별반 다를 것 없어. 특벼한 일이랄 것이 없지.”
“그럼 우리 둘 다 시시한 사람들이네.”
“시시한 게 나쁜 건 아니야.”
“맞아요. 나쁜 건 아니지. 다만 심심할 뿐인 거지.”
심심한 것도 나쁘지 않아. 적어도 그것이 사라졌을 때 아쉽지 않거든. 그 아쉬움 때문에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할 일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심심하게 사는 것도 나름 괜찮은 삶이야, 라는 말을 나는 하지 않았다. 그냥 소리와 함께 나란히 서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듯한 햇빛을 쬐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어제 너무한 거 아녜요?”
한참을 눈을 감고 내게 기대어 서있던 소리가 갑자기 내게서 몸을 떼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제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난 도무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며 난처해했다.
“실수했죠. 그것도 큰 실수를.”
소리가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소리는 난처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더욱 재밌어했다.
“적어도 남자가 여자 집에 와서 함께 잔뜩 취하도록 술을 마셨으면, 그래도 뭔가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아요?” 소리가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한가득이다.
“그런가? 하지만 어제는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안들 정도로 잔뜩 취해 있었는걸. 혹시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됐어요. 아저씨는 또 이런 상황이 와도 똑같을 거야. 그리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 했다면 아마 내가 아저씨를 물었을걸요?”
“하지만 나도 꽤 음흉한 면이 분명 있다고. 다음번엔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술을 적당히 마셔야겠어. 그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장난스레 말했다.
“뭐. 한 번 기대는 해 볼게요. 그렇게 큰 기대는 아니지만 말이에요.”
소리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 언저리를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아, 그리고 여자가 잔뜩 술에 취해서 잠이 들면 클렌징 티슈를 사용해서 화장을 좀 지워주고, 몸에 딱 맞는 스키지 바지를 입고 있다면 그래도 옷은 좀 갈아입혀 줘야죠. 나 지금 다리에 피가 안 통해서 다리가 통통 부은 것 같단 말이야. 얼굴은 화장을 못 지워서 말도 아니고. 알겠어요?”
“알겠어. 다음엔 화장도 지워줘야 하고 스키니바지도 갈아입혀줘야 하니 정말로 술을 조금만 마셔야겠군. 여자랑 술을 마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소리도 나도 오랜만에 누리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가능하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맞이하고 싶은 그런 시간들이 이른 아침 빨간 벽돌집을 따듯한 햇살과 함께 관통하고 있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