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가늘고 긴 꿈이 있어 -15

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야기

by 제인

성수는 침대난간을 두드렸다. 손등까지 상처가 있어 손끝까지 붕대를 감은 상태였다. 몸이 침대에 붙어버린 느낌이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팔꿈치는 들 수 있었다. 두드렸다고 생각했는데 들리지 않을지 모른다. 숨을 고르고 침을 삼켰다. 그는 다시 한번 난간을 두드렸다. 몸은 뜨거운데, 얼굴은 시렸다. 다른 쪽 손으로 시트를 긁었다. 주먹을 쥐고 싶었는데 붕대 때문에 쥘 수 없었다. 간호사가 다가오자 그는 고개를 들어 왼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가 눈을 감았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말씀하세요."


간호사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늘어져있는 팔을 다시 들어 손가락을 뻗었다. 그녀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또 있어요?"


또? 또 인지는 모르겠다. 간호사를 불렀던 기억은 없었다. 간호사는 벽 쪽으로 가 섰다. 그리고 팔을 벌려 크게 휘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운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국민 체조 같기도 했다.


"선생님, 웃겨요."


옆 침상에 누워있던 남자가 껄껄 소리를 내리며 웃기 시작했다. 성수가 고개를 들자 간호사는 '이것 봐요. 없어졌죠?'라고 말하고는 옆에 앉은 남자의 다리 아래에 깐 패드를 보러 갔다.


"선생님은 안 무서워요?"

"전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질 때가 제일 무서워요."

"아니, 환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누가 와 서 있다는데 안 무섭다는 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있다고 쳐요. 온통 흰색이면 저게 구름인지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다른 색이 있어서 구름을 구름답게 해 주는 거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그러니까. 저 어둠의 사자는 여러분들 밝게 살라고, 더 살라고 와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니까요?."

"에이, 그게 무슨......"


그녀는 벽을 훑어보았다. 허리에 팔을 척 올리더니 허공에다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그만 가 주세요. 여기 아니에요, 잘못 찾아왔어요. 그리고 우리 창이, 오늘은 그만 장난 치자. 삼촌들 피곤하대. 알았지? 아이~ 착해."

"선생님, 창이는 괜찮아요."


창이는 지난달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인데, 아이가 떠난 후 환자들은 매일 밤 창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창이가 침대 주변을 뛰어다니거나, 침대에 올라와 같이 놀자고 떼를 쓴다고 했다. 죽은 자와, 망자를 기다리는 자, 숨을 지켜야 하는 자가 모인 밤이었다. 그녀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가 어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문 너머 짙은 어둠 사이사이 구름의 깔려 있는 것을 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녀는 비강 캐뉼라를 하고 있는 성수의 산소 호흡기에 증류수를 부은 다음, 자세를 변경하기 위해 환의를 정돈했다.


"그 애 이름이 창이에요?"

"태명이래요. 창창하라고 지었는데 어머니가 창이라고 불러주면 더 좋아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래서 창이라고 부르시는군요. 선생님. 저 발 시린데 뭐라도 좀 덮어주세요."


어떤 땐 밤이 왔었나 싶게 아침이 되기도 한다. 어둠은 낮에도 찾아와 두려움에 바짝 엎드리게 한다. 생사는 네모난 모니터의 수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에도 눈은 끈질기게 그래프의 선을 쫓아간다. 쫓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 그 선을 걷고 일어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창이가 있던, 지금은 비어 있는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아이 생각이 났다.

이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다와 나무를 그려보았다.

풍경이 들려주는 침묵 속에, 모든 것이 자유롭고 평화롭기를 바란다.

바다와 나무

오늘의 그림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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