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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0. 2020

버릇

Etham- 12:45

Etham - 12:45 듣기

"우리가 지금 왜 싸우는 건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니?"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왜 싸우는 건지 아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고 말이다. 그래, 나는 대화의 초점이 어느 순간 흐릿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버릇. 피하고 싶어서, 아니 그와 더 이상 싸우기 싫어서, 싸우기 싫다는 말은 그가 뱉는 말에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고 나 또한 그에게 아픈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 따위 해버려서 이별하지 않았으면 해서. "말 안 할 거니?" "하기 싫어." 난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가 듣기에 참 어이없는 말이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한번 말할까.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무서운 거라고 말할까. 진심이 아닌 말은 어쩌면 이리도 제멋대로 나와버리는지. 차라리 아무렇게나 말이 나와버린다고 제발 듣지 말아 달라고 할까. "뭐? 하기 싫어? 그럼 나랑 지금 얘기할 필요 없네. 전화 끊자."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바보 같은 말을 지껄이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마도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아마도 그건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눈으로 몇 시 몇 분인지도 모를 시각에 오직 그를 붙들고 싶었다. 그의 한숨이 가슴을 타고 내려와서 발 끝까지 전해졌다. 온몸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너 말 안 할 거잖아. 그냥 이렇게 붙들고 있을 거잖아. 끊고 싶지 않은 건 너지, 내가 아니야." "알아. 아는데 끊지 마." 버릇. 결국 보채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이런 나를 그는 그동안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도 당연히 그럴 거라는 것도 알면서. 눈물 따위 보여봤자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거라는 걸 아는데 나는 그와 싸울 땐 좋지 않은 버릇이 너무 많다. "나 끊고 싶어. 얘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마지못해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가 전화를 끊으면 나는 한참을 귀에 대고 못한 말을 해댄다. 미안하니 어쩌니, 그럴 마음도, 그렇게 말하려던 것도 아니라고 버릇 같은 말들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버릇처럼 다시 전화를 건다. 그는 왜 전화를 걸었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망설일 것이다. 잘 자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나 싸늘해져 버렸고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말을 하면 제대로 초점이 흐릿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의 컬러링을 들으면서, 나는 그 가사를 계속 계속 곱씹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래가 계속 되풀이되면 발끝까지 힘이 풀린다. 그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받지 않아도 이 노래가 계속 계속 되풀이되기를 생각하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그가 전화를 걸어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하고  생각한 말을 중얼거리며 우리가 다시 웃던, 다시 울던 열두 시간이 지나 그의 점심시간에 전화를 건다. 우리는 안부를 묻고 어제의 일에 대해 서로 묻지 않는다. 그리고 바보 같다며 웃어 버린다. 그도 버릇이 있겠지, 나처럼.




I know that you wanna start

Cause we got our problems

I love you but I just need tonight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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