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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01. 2020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샤이니- 내가 사랑했던 이름(Song by 온유, 김연우)

"여기에요!!"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매일매일 다시 태어나는 듯 아름다웠던 그녀는 추운 이 겨울, 발그레진 두 볼과 꽁꽁 언 두 손을 꽉 쥐고 입김을 호호 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크게 흔든다.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나를 멈춰 서게 한다. 어정쩡하게 서서 그녀를 바라보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 보였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동안 내 오랜 친구는 어느새 문을 열고 나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늘 그래 왔듯 자신의 품에 그녀를 이끈다. "너  인마!! 왜 이렇게 늦었어! 애들이 나보다 너를 더 기다린다니까?" "맞아요. 다들 우리 결혼보다 진후 씨를 더 기다려!" "들었지? 얘도 오늘은 너 꼭 볼 수 있는 거냐고 몇 번이나 물었는데! 기분 엄청 나쁘다 그거?" 나는 슬쩍 웃으며 친구의 어깨를 툭 치곤 '결혼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쉬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몇 달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색하지 않게 표정 연습을 하며 고백이나 하는 사람처럼 거울 앞에 서서 웃다가 울다가 주저앉다가 나를 추슬렀다. 이제 정말 축하해야 할 때, 이 순간이 멈추거나 나아가거나. 나의 바람 같은 건 무색하게 시간은 흘러간다.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는 그 축제의 시간 속으로 내 걸음을 들여놓는다. 나는 누구보다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으로 내 오랜,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문득문득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순간에 나는 너무 우스워 눈물이 난다며 그러다 정말 진심으로 부럽다고 술기운에 털어놓고 고개를 도리질 친다. "진후 씨." "네?" "진후 씨는 아직 결혼 생각 없죠? 연애, 결혼. 그런 거엔 도통 관심 없는 사람 같아요." "그래 보여요?" "소개해 줘도 진후 씨가 다 퇴짜 놓고." "나 그런 적 없는데." "그런 적 없으시다? 하긴... 연애는 서로가 좋아야 하는 거니까." "저 때문에 친구들이랑 소원해진 거 아니죠?" "하하, 나 진후 씨 그렇게 말하는 거 좋아요. 저 사람은 툭툭 내뱉는 말을 진후 씨는 뭐랄까? 음! 이마에 열 있나 짚어줄 때처럼 기분 좋게 해주는 말 있잖아요?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다들 진후 씨 좋아하지. 진후 씨는 좋아하는 사람 직접 찾아요. 우리 기대하고 있을게요."

 언젠가 셋이 같이 극장에 간 날,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둘이 나란히 앉아 양손에 팝콘, 콜라를 들고 있다 팝콘 상자 좀 들어보라고 말하는 그녀를 의아하게 보며 가만히 상자 하나를 내미니 콜라 든 손은 쓸 수가 없어 상자로 가까이 와 팝콘을 집어 무는 그녀의 얼굴에 묻은 부스러기를 보며 나는 떼어줄 수도 없고 모른 척할 수도 없어 어깨를 들썩 거리며 '얼굴에.'라고. "우리 되게 웃긴 거 알아요?" "뭐가요?" "아니~ 이거 내려놓으면 되는데 둘이 꼭 붙들고 앉아서... 흐흐." 흐흐하고 웃다가 킥킥하고 웃는 그녀를 보다가 나도 웃어버렸다. '우리의 팝콘은 소중하니까!'라고 외치듯 말하자 그녀 더 크게 웃더니 '정답!' 하고 외치 또 깔깔. 나는 시간돌아가 그녀의 옆에 앉아있다. 내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고여 있으리라고 그러나 내 사랑은 곧 썩어 버리거나 말라갈 거라고. 그렇게 잊힌 듯 아닌 듯 조금의 흔적도 없이 바람에 실려서 날아가기를. 행복하라고 말하는 나의 이 거짓말과 거짓 마음, 그들은 가장 진실된 것이라고 믿고 있겠지. 매일 밤 꿈속에서 배신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의 거짓 아닌 고백은 뱉어진 순간 흩어져 사라지고 나는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에 미안하다고 외쳤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지만 나 혼자 한 거니까. 너의 사랑은 온전하게 너의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아니까. "너 우리 결혼식 때도 늦는 거 아니지?" "내 부케, 진후 씨한테 던질 거니까 꼭 와요?" "안 늦을게. 그 부케 받고 나도 연애 좀 해보자." "오... 희망이 있는데? 제발! 그래 주면 내가 고맙지."

새벽녘, 파란색, 흰색 마시멜로우가 하늘에 둥둥 퍼져간다. 어디에선가 듣고 외워버렸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직 캄캄한 골목길 속으로. 가로등은 꺼지고 나는 아직 어두운 이 길을 걷고 하늘은 곧 다른 얼굴을 내밀고 나를 위로할 테지. 나는 괜찮다. 언제나처럼 이렇게 마음을 조금씩 흩뿌려 두고 걷다 보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빈 손이 될 지도. 그럼 정말 괜찮아질지도.



혼자 할 수 없는 사랑이란 느낌은 내게 다가와
시작할 수도 없는 그리움들은 커져만 가고
시린 가슴 한켠엔 너의 향기만 남아
내가 사랑했던 그 이름
불러 보려 나갈수록 너무 멀어졌던
그 이름 이제 적어놓고 나 울먹여
내 안에 숨고 싶어져
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을 이제 알아줘요
이룰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이니까
샤이니- 내가 사랑했던 이름(Song by 온유, 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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