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식탁 여섯 번째 이야기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 오랜 기간 주방을 책임지신 내 어머니 역시 미원을 비롯한 각종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본인 요리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로 여기셨다. 지금에야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어머니의 ‘미원 사용금지’ 원칙은 매우 합리적이고 현명하게만 느껴졌다. TV에선 매일같이 MSG로 인해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는 사람과 뇌가 굳어버린 실험용 쥐 이야기가 전해졌고, 출시된 각종 조미료 광고 역시 자신들은 ‘천연이다, 안전하다’를 강조하는 통에 외려 ‘조미료는 유해한 것’이라는 의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조미료를 음식에 ‘투하’하는 식당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늘 생각했다. ‘역시 우리 엄만 위대해!’
정말 나쁠까?
의심은 내가 조금 더 자란 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던 중 시작됐다. 시장 한 귀퉁이 분식집 할머니의 떡볶이가 바로 그 주인공. 할머니의 떡볶이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작고 길쭉한 떡으로 만드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어느 ‘국가대표’ 프랜차이즈 업체와 모양도 맛도 비슷하지만 여기에 감칠맛이 더해진 느낌이랄까? 달큰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난 떡볶이는 훈김 후후 불며 그 자리에서 먹어도, 식어서 굳은 상태에 물 조금 부어 뭉근히 덥혀먹어도 늘 오감을 두루 만족하는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곧 만들어 줄테니 쬐끔만 기다려 보꾸마.”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식집을 찾은 그날, 할머니는 자리에 앉은 나를 위해 다시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법은 정점에 다다른 맛의 경지와 달리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맑은 어묵 국물 몇 국자와 고추장, 가는 고춧가루, 설탕. 그리고 미원 크게 한 국자. ‘어라, 저거 나쁜 건데?’
‘맛’은 ‘미원’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16세기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마키아벨리가 그 장면을 함께 지켜봤다면 틀림없이 이런 말쯤 하지 않았을까 싶다. “뭐, 어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 법인데!”
마키아벨리의 대표적 저작인 <군주론>은 통치자를 일정한 역할과 자질을 갖추길 권고하는 일종의 소책자다. 그는 비슷한 부류의 책을 쓴 저자 대부분이 겸손이나 정직함, 동정심 등을 군주의 미덕으로 제사한 것과는 달리, 권력을 유지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용맹스러움과 단호함, 기민한 판단력 등을 통치자가 갖춰야 할 우선 덕목으로 꼽았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인간은 변덕스럽고 거짓말쟁이에 탐욕이 가득한 존재다. 단순히 감동을 주거나 선의, 호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상황에서 사람들을 통치해야 할 군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와 국가 부강에 전력을 다 해야 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가 말하는 핵심 개념인 ‘비르투virtu’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비르투란 미덕virtue의 어원인 라틴어 비르투스virtus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마키아벨리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그는 비르투를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담보하는 수행능력이라 설명한다. 여기엔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국가의 발전에 저해되는 인물을 암살하는 것, 필요할 경우 내 편까지도 처치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포함하게 된다. 물론 비르투를 갖춘 사람이라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든 일에는 다 ‘운’이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운도 젊고 용감한 자들에게 따른다고 생각했다. 마치 용맹한 사자가 동물의 세계에서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것처럼 용기 있는 군주가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 모두를 차지할 운명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마키아벨리가 이런 입장을 꺼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Flirence)는 늘 격변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태어나던 해인 1469년에는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일명 ‘위대한 로렌초’가 통치자에 올라 번영을 이끌었지만, 23년 뒤인 1494년에는 그의 뒤를 이은 아들 피에로(Piero)가 샤를 8세 치하의 프랑스에게 냉큼 항복을 선언하며 몰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가로서 세상의 전면에 나선 것은 항복 4년 뒤인 1498년이었다. 그는 당시 스물아홉에 불과했지만 메디치 가문을 대신해 세워진 공화정에서 지금으로 따지면 국무부 차관보 정도에 해당하는 제2서기관에 임명됐다. 특히 그는 프랑스, 스페인 등이 넓은 국토와 다수의 국민을 바탕으로 세를 넓혀가는 상황에서, 내세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피렌체의 외교를 담당하며 명성을 쌓았다. 프랑스 고위 관리와의 자리에서 “피렌체인들은 전쟁을 몰라”라는 독설에 마키아벨리가 “프랑스인들은 정치를 모르죠”라고 응수했다는 일화는 그의 언변과 외교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하지만 명예도 잠시, 1512년 프랑스 군대가 교황이 이끄는 신성 동맹의 군대에 밀려 이탈리아에서 철수하자 프랑스의 지원을 받던 피렌체 공화정 역시 힘을 잃게 된다. 공화정의 실무자 중 하나였던 마키아벨리 역시 마찬가지. 다시 권력을 잡은 메디치가에 의해 고문을 당한 뒤 추방된다. 그 이듬해 그는 교황 레오 10세의 즉위 직후 특별 사면조치를 받았지만 다시 공직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그는 약 14년간 시골에 틀어박혀 글쓰기에 몰두했다. <군주론>을 비롯해 <로마사론>, <정략론>, 희곡 <만드라골라> 등이 이 시기에 작성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잔인한 군주의 모습을 담은 <군주론> 외에도 <로마사론>과 <정략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며 국민의 존경받는 통치자를 그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잔인한 군주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인물일 뿐, 그 역시 궁극적으로는 민주적인 국가를 꿈꿨던 것이다.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원을 비롯한 MSG 성분 조미료의 유해성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MSG는 천연조미료나 다름없어 유해할 일이 없으며 논란 역시 단순한 헤프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쪽과 ‘과다섭취할 경우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싸구려 재료를 이용한 음식의 맛을 억지로 좋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당연히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무엇이 ‘맞다’고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양쪽 모두 적은 양은 건강상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에 어느 정도 긍정하고 있다는 점과 그날 할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는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맛에 대한 갈증은 국가적인 위기사태와 필적할만한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가끔은 모른 체 맛있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음식의 최대 목적은 ‘맛’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