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_어쩌다 보니 밥 해주는 필라테스 선생님
어쩌다 보니 필라테스 강사가 되었고, 또 어쩌다 보니 ‘밥 해주는 필라테스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필라테스 강사가 밥까지 해줘야 돼요?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은 따뜻한 온기를 나누면서 사는 것이니까. 그것이 밥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처음엔 그냥 내 도시락이었다. 바쁜 하루를 버티려면 제대로 된 한 끼가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늦은 저녁, 레슨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을 받은 회원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배고파요. 지금 집 가서 뭐라도 해 먹어야 하는데, 뭘 먹어야 좋을까요?”
그 순간, 나는 대답 대신 멋쩍게 웃었다.
“글쎄요…?”
그러다 문득, 내 가방 속 도시락이 떠올랐다.
유부초밥 네 알.
참치 샐러드, 매콤한 쌈장, 크래미, 타코, 고추냉이까지 정성껏 올려진 유부초밥.
나는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드세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한입일지도 몰라요.”
“더운 날에도 상하지 않게 만들었어요. 배고플 땐, 잘 먹어야죠.”
그 순간, 그의 얼굴에 감동이 스쳤다.
그날의 작은 나눔이 시작이었다.
나는 어느새 필라테스 강사이면서 동시에 ‘밥 해주는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필라테스 강사가 밥까지 챙겨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해줄 수는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기꺼이 선택했다. 그 일이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았다. 마음을 나누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었으니까
필라테스 회원들은 퇴근하고 오느라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집에서 만들어 온 도시락을 한두 번 나눠주다가, 어느새 주먹밥과 국물요리를 만들고, 심지어 어느 날은 떡볶이를 만들고, 또 다른 날은 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이 몸에 안 좋다고 하지만, 어떤 회원에게는 밀가루 음식이 괜찮았고, 또 어떤 회원에게는 속이 편한 음식이 필요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회원들의 몸 상태를 고려해 음식을 건넸다.
사실 나는 회원들에게 인생을 상담해 주고, 마음을 상담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음식이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콤한 떡볶이를 건넨 순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회원의 입가에서 웃음이 번지고, 달콤한 사과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건넨 순간 우울해하던 회원의 얼굴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회원들의 모습. 그건 마치 부모가 자식이 잘 먹고 잘 웃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도 같지 않을까.
나는 결코 요리를 잘해서 음식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가 먹으려고 만든 음식을,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건넬 뿐이다.
그 음식은 곧 내 마음이다. 내가 만든 한 끼는, 잘 차려진 만찬은 아닐지 몰라도, 마음을 담은 한입이다.
세상에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맛있는 식당도 넘쳐난다. 사 먹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직접 만든 밥을 나눈다.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마음까지 함께 전하고 싶어서다.
회원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몸이 아픈 사람들 가운데, 마음까지 아픈 이들이 많다는 걸. 그리고 때로는 음식이 그 마음을 살포시 어루만지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먹을 밥을 만든다. 그리고 문득, 그 치유가 필요한 누군가가 떠오르면 그 밥을 나눈다. 마음을 나누듯, 자연스럽게.
“선생님, 식당 차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초밥 도시락 만들면 대박 날 것 같은데?”
회원들의 장난스러운 제안을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저는 필라테스 가르치는 게 좋아요.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
하지만 진짜 재미가 붙었다.
어느 날은 잡채를 만들고, 어느 날은 동그랑땡을 부치고, 깻잎 전을 만들기 위해 계란물을 입히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필라테스 강사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반찬까지 만들어주고 있잖아.
이건 결코 의무가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마음이 지치거나 몸이 힘들 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 둘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필라테스 강사의 일은 단순히 운동을 지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을 돌보는 것에서 시작해, 마음까지 살피는 일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게 필라테스의 본질이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때로는 한 동작의 정렬이, 때로는 따뜻한 한 끼가 그 균형을 회복하게 한다는 걸, 나는 회원들과 함께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운동을 가르치고 밥을 짓는다.
몸과 마음을 함께 보듬으며,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해지길 바란다.
회원들은 종종 웃으며 말한다.
“선생님, 도시락 장사하세요. ‘에버유 샌드위치’, ‘에버유 밸런스 도시락’ 하면 대박 날 것 같아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웃지만, 한편으로는 문득 생각해 본다.
정말 ‘에버유 밸런스 도시락’을 만들어볼까?
나는 필라테스를 통해 몸을 단련했고, 음식을 통해 마음을 나눠왔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를 분명히 깨달았다.
진짜 균형 잡힌 삶은,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나는 여전히 필라테스를 사랑하고, 회원들에게 정성을 다해 레슨을 하는 열정 넘치는 강사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의 초밥’을 나누고, 건강한 도시락을 고민하는 사람으로도 살아간다.
운동과 음식, 몸과 마음, 그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 길이, 나의 ‘에버유’가 되고 있다.
결국, 인생은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 온기가 꼭 음식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배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진심 어린 미소가 될 수도 있다.
필라테스를 통해 몸을 건강하게 하듯, 따뜻한 한 끼는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몸을 돌보는 일, 밥을 나누는 일,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랑을 건네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은 의무가 아니다. 그건 언제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기쁨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행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
나는 오늘도 필라테스를 가르친다. 그리고 가끔, 밥을 나눈다.
그 단순한 두 가지가 내가 찾은 인생의 균형이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