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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우리를 위하여

5장 백설공주의 난쟁이들 ― 작은 존재들의 힘

by 유혜성

5장 백설공주의 난쟁이들 - 작은 존재들의 힘


공주는 왜, 혼자가 아니었을까


동화 속 공주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

백설공주도, 신데렐라도, 인어공주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누군가의 사랑에 기대어,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언제나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지만,

그 화려한 장면 뒤에는 조용히 그녀를 떠받치던 작은 존재들이 있었다.


백설공주를 살린 건 왕자의 입맞춤이 아니라

숲 속에서 그녀의 잠을 지켜준 일곱 난쟁이들이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그들의 손길이야말로 공주가 끝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준 힘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의 중심은 언제나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곁을 지켜주었는가’였다.


그들은 이름 없는 조력자였고,

세상은 그들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렸지만,

그들의 다정함이야말로 세상을 다시 굴러가게 하는 진짜 마법이었다.

줄거리, 다시 읽기


‘백설공주’는 1812년, 독일의 그림 형제가 펴낸

<가정과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집> (Grimm’s Fairy Tales)에 처음 실린 동화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소녀가, 새어머니의 질투로 숲 속에 버려지고

그곳에서 일곱 난쟁이를 만나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은 중세 유럽,

계급이 뚜렷하고 순수함이 오히려 생존을 위협받던 시대였다.

백설공주는 낯선 이를 경계하지 못한 채

마녀가 건넨 세 번의 유혹- 빗, 끈, 그리고 마지막 붉은 사과 앞에서 번번이 쓰러진다.


그녀가 깨어난 건 왕자의 입맞춤 덕분이었지만,

그 기적을 기다릴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잠을 곁에서 끝까지 지켜준 난쟁이들의 인내와 다정함이었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는 그렇게 끝나지만,

그 마지막 문장 뒤에는 언제나 여백이 남는다.

그녀의 행복을 지켜낸 작은 존재들,

그들의 이야기를 누가 기억해 줄까?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들〉, 그리고 또 다른 시선


그 여백을 이어받아, 백설공주는 세월이 흐르며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동화 속 이야기들이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새로운 숨을 얻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한 작품이 있다.

바로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들〉이다.


이 작품은 2001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된 국내 창작 뮤지컬이지만,

그 뿌리는 20세기 후반 서구에서 시작된

‘조력자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백설공주’ 흐름과 닿아 있다.

기존의 해피엔딩을 뒤집어,

백설공주를 사랑했지만 끝내 떠나보내야 했던 난쟁이들의 눈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지켜봄의 미학이었다.

빛을 받지 못한 채 그늘 속에 서 있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깊은 헌신으로 백설공주의 삶을 지탱했다.


나 역시 이 장에서 그 시선을 빌려,

빛나는 주인공보다 그녀를 떠받친 존재들에 집중하고자 한다.

백설공주가 해피엔딩에 닿을 수 있었던 건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그녀의 무너짐을 끝까지 감싸 안은 작은 존재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 덕분이었다.


결국 이 동화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을 지탱하는 작은 손길들


백설공주는 타인의 악의 앞에서도 끝내 순수를 버리지 못한 인물이다.

상처받으면서도 사람을 믿고,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사랑을 갈망했다.

심리적으로 보면, 그녀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였지만, 끝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난쟁이들은 그녀 안의 또 다른 자아,

보호 본능과 연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 작음이야말로 타인의 약함을 가장 잘 이해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진짜 회복은 혼자 강해지는 데서 오지 않는다.

누군가와의 연결,

곁에서 조용히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서 시작된다.


어떤 이는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어떤 이는 친구의 짧은 전화 한 통으로,

또 어떤 이는 낯선 독자의 문장 하나로 다시 일어난다.


그 작은 다정함이,

무너짐의 자리에서 우리를 다시 세운다.


보이지 않는 연대의 세계


오늘의 세상에도 ‘난쟁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이름 없이 일하고, 스포트라이트 한 줄 없이도 누군가를 살려낸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우리는 흔히 주인공만을 기억하지만,

세상은 ‘조연의 진심‘으로 유지된다.

무대 뒤에서 의상을 손질하는 사람,

실패 후 조용히 등을 두드려주는 친구,

그리고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해주는 한 독자,

그 모든 이들이 이 시대의 난쟁이들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얼굴도 있다.

마녀와 왕비처럼,

누군가의 가능성을 질투하고

다른 이의 빛을 꺼뜨리려는 사람들.

그들은 곳곳에 숨어 있다.

직장에서도, 관계 속에서도,

그리고 때로는 우리 마음속에서도.


세상은 늘 그 둘의 균형 위에서 흔들린다.

파괴하려는 손과, 지켜내려는 손.


그 속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질투의 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난쟁이의 손이 될 것인가.


살다 보면, 우리는 두 얼굴 모두를 만난다.

무너진 나를 일으켜준 손,

그리고 나를 흔들었던 손.

그 모든 손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거대한 힘이 아닌 작은 손길들의 연대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나는 난쟁이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인공을 끝까지 살려낸 숨은 주인공이었다.

작고 보잘것없었지만,

그 작음이 오히려 세상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결국 난쟁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있었기에 공주는 깨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잠을 지킨 건 왕자가 아니라,

묵묵히 곁을 지킨 일곱 쌍의 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난쟁이들을 사랑한다.

조용히 곁을 지키고,

이름 없이도 세상을 버티게 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난쟁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마녀의 질투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작은 손길로 서로를 살린다.

그 손들이 이어져

불완전한 우리를 완성시킨다.


오늘, 당신 곁의 난쟁이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혹시, 당신이 누군가의 난쟁이였다면

그 순간을 기억하자.

그 온기가 바로 세상을 지탱하는 희망이다.

함께 나누는 질문


• 당신의 삶 속 ‘난쟁이’는 누구였나요?

• 그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혹은 당신이 누군가의 ‘난쟁이’였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그리고 오늘, 당신 곁의 ‘마녀’를 이길 수 있게 만든 건 무엇이었나요?


짧게라도 괜찮아요.

당신의 고백 하나가 또 다른 누군가의 숲을 밝혀 줄

작은 등불이 될 거예요.


한 줄 메모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영웅이 아니라,

조용히 곁을 지키는 마음의 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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