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늦게 핀 꽃은, 향기로 기억된다
남들은 빠르게 달려가, 원하는 곳에 이미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인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렇게 속으로 자신을 자꾸만 밀어붙이던 어느 봄날, 나는 우연히 한 그루의 나무를 마주했다. 그날의 나는, 그 나무 앞에 오래도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봄이 오면 우리는 자연스레 꽃을 기다린다. 꽃샘추위에 움츠렸던 봉오리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아 조금씩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마음도 덩달아 설렌다. 특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거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일 때면, 그 순간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어느 해 봄, 나는 유난히 늦게 피어난 벚꽃나무를 본 적이 있다. 다른 나무들은 이미 만개했다가 바람에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는데, 그 나무는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이렇게 생각했다.
‘얘는 왜 이렇게 늦게 피지? 너무 느리잖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나무는 마치 팝콘이 터지듯 꽃을 피워냈고, 오히려 그 순간이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미 다른 벚꽃들은 다 져버렸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오롯이 그 나무에 머물렀다.
“어머, 여긴 아직도 이렇게 꽃이 피어 있네. 너무 예쁘다.”
사람들은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고,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나무는 자기만의 시간을 기다린 거구나.’
그 꽃은 늦게 피었기에, 더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향기를 남겼다.
세상의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연꽃이 피고, 가을에는 국화가 피며, 한겨울에는 매화가 핀다. 같은 벚꽃나무 안에서도 가지마다 피는 속도는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사람의 인생도 같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달릴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20대에 빠르게 성공하고, 누군가는 40대, 혹은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어떤 꽃은 이른 아침에 피고, 어떤 꽃은 해가 질 무렵에 피어난다. 늦게 핀 꽃은 더디게 필뿐 피어나지 못한 꽃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맞춰서 살지 못할까 봐 늘 불안해한다. 그러나 인생은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의 게임이 아니라, 결국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느냐의 여정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빠른 피어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피워야 할 꽃이 무엇인지, 언제 피는 게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 진짜 순간이 왔을 때, 당신은 가장 찬란하게 피어날 것이다.
나는 기자였고, 교수였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서른 후반,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필라테스 강사라는 새로운 삶.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지금 시작해도 될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잘 따라가는데, 그런 세상 속에서 나만 너무 느리고, 또 뒤처져 보였다.
하지만 필라테스를 하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길들, 질문하고, 쓰고, 가르치고, 듣고, 돌보았던 그 모든 경험들, 그게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단지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 오래, 더 깊이 숨을 고르고, 더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게 아니듯, 나 또한 나만의 계절에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었다.
천천히,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러다 마침내 자기만의 계절에, 자기만의 향기로 피어나는 그런 꽃.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나만의 봄을 맞이하고 있었던 거다. 인생엔 첫 번째 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봄도 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봄에 피어난 꽃은, 단순히 늦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향기로울 수 있다.
혹시 지금, 당신도 너무 늦었다고 느끼고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앞서 나아가는데, 나만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꼭 기억하자.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늦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다.
때로는 천천히 가는 길이, 오히려 더 멀리 도달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만의 계절을 만나 가장 찬란한 꽃을 피울 것이다. 지금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꽃이 피어날 때, 그 향기는 누구보다도 진하고 깊이 있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속도를 믿어라. 당신의 꽃은 반드시 피어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당신 다운 모습으로.
혹시, 알고 있는가?
봄꽃의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벚꽃보다 훨씬 늦게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는 것을.
5월의 끝자락, 모두가 잊은 듯한 길가에서 ‘작약’은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 그 자태는 봄의 초입을 수놓던 꽃들보다 더 풍성하고, 더 향기롭다. 늦게 피었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하고, 누군가의 마음에도 깊이 스며든다.
마흔다섯, 아이 둘을 키우며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잊고 살았다 ‘는 한 회원님은 처음 필라테스하러 왔을 때, 거울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필라테스를 하며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고 말했다.
용기 내 짧은 원피스를 입고 와 “선생님, 저 예전보다 날씬하고 예뻐진 것 같죠?” 라며 웃었다. 그 웃음은, 단순한 체형 변화 이상의 기적이었다. 그분은 말한다.
“지금이 제 인생의 첫 번째 봄 같아요.”
또 다른 회원님은 쉰을 넘긴 나이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늘 ‘나이 들어서 뭘’이라며 망설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린 꽃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그분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이 엽서에 어떤 문구를 적으면 좋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건 어떨까요?
‘늦게 핀 꽃은 향기로 기억된다.‘
그분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문장을,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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