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공법을 선택하는 용기
레슨을 마친 회원 한 분이 조심스레 던진 이 질문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초조함, 조바심,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을까’라는 불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그림자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지금 뭐 하고 있어?”,
“앞으로 계획은 뭐야?”
늘 결과 중심의 질문만 오가고, 과정은 생략되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늘 이야기해 왔다. 진짜로 강한 사람은 ‘정공법’을 택하는 사람이라고.
정공법이란 단순히 천천히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방향을 끊임없이 점검하며, 끝까지 자신의 길을 책임지는 태도다. 그 길이 남들보다 더 돌아가는 길이라도, 자신에게 정직한 방식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런 ‘정공법’의 길을 살아낸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브라이언 크랜스턴(Bryan Cranston).
브라이언 크랜스턴. 그의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출연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를 아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눈이 커질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평범한 고등학교 화학 교사에서 마약 제조자가 되어가는 ‘월터 화이트’ 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방영되었고, 평단과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이 역할을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늦게 핀 꽃이자, 세상에 늦게 알려진 사람.
그는 성우, 작가, 프로듀서, 감독 등 다양한 일을 해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의 그를 만든 대표작은 인생의 후반부에 찾아왔다.
그전까지 그는 수많은 조연과 단역을 전전하던, 말 그대로 무명의 배우였다. 하지만 그는 조급함 대신, 누구보다 철저히 연기를 준비했고, 작은 역할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다했다. 그는 말한다.
“기회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이 되는 것은 내 몫이다.”
그가 자서전 <A Life in Parts>에서 고백한 한 문장은, 인생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오디션장에 갈 때, 뽑힐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 역할이 나에게 진심으로 맞는지를 확인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그 일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 그런 자세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게 한다. 결과보다 과정에, 평가보다 의미에, 집중하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마침내, 무대의 중심에 서는 사람은 누구보다 오래 기다리고, 꾸준히 걸어온 사람이다.
속도가 느려도 진심이라는 나침반만 놓치지 않는다면, 그 길은 반드시 나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준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그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50세가 넘어서야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요령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은 때로 평탄하지 않았고, 인지도 없는 역할도 많았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작은 역할에 진심을 다하며 연기를 계속했고, 결국 ‘월터 화이트’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그는 이 작품으로 에미상(Emmy Awards)을 6차례 수상하며 세계적인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다.
남들이 먼저 앞서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속도로 걸었다. 언젠가 진짜 자신을 필요로 하는 무대가 올 것이라 믿었기에.
그리고 결국, 그 순간은 그에게 찾아왔다. 그의 인생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성공에는 마감기한이 없으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진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도착했느냐가 아니라, 그 여정을 어떤 태도로 걸어왔는가라는 사실이다.
그의 삶을 따라가며 나는 깨달았다. 정공법이란, 조용하지만 깊고 단단한 자기 신뢰에서 비롯된 용기라는 것. 조금 돌아가더라도, 남들보다 늦더라도, 끝까지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한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자신만의 무대에 당당히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늦게 핀 꽃, 그 향기는 오랜 시간 뿌리를 내리고, 버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내공에서 비롯된다. 정공법을 선택한 당신이 느리고, 더딘 것처럼 보여도 조급해하지 말자.
정공법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당신을 성장시킨다. 그 끝에는, 누구보다 오래 사랑받는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전 세계가 사랑하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쿠사마 야요이. 그녀는 무한히 반복되는 점과 선, 강박적인 패턴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가다.
1929년 일본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환각과 강박증에 시달렸다. 하늘을 보면 점이 쏟아지고, 바닥을 보면 꽃이 말을 걸었으며, 천장은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착각 속에 살았다.
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각은 그녀에게 고통이자 동시에 예술의 문이기도 했다. 감정을 견디기 위해 그녀는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며, 반복되는 무늬로 스스로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예술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건, 자신을 붙잡는 끈이었다.
스물아홉, 그녀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일본을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오직 하나, ‘예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960년대의 뉴욕 미술계는 남성 중심의 견고한 성벽과도 같았고, 동양의 여성 아티스트인 그녀에게 그곳은 차갑고도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기괴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고, 그녀의 아이디어는 너무 쉽게 타인의 손에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외로움과 거절, 무시 속에서도 그녀는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녀는 스스로를 믿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녀는 단지 자기만의 ‘선’을 그었을 뿐이다”
그 선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50년 동안 아무도 손뼉 쳐주지 않았다.
결국 1977년, 그녀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지금도 도쿄의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지만, 병원 근처 작업실에서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고,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올해 96세인 그녀는 여전히 작업 중이다. 그녀는 말한다.
“정신병이 나를 괴롭혔지만, 예술이 나를 살렸어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가을이 다 지나서야 피어나듯, 쿠사마 야요이의 꽃은 늦게 피었다.
1989년, 뉴욕 현대미술관 회고전을 계기로 세상은 그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 작가로 선정되며 그녀는 조용히 재조명되었다. 외면받던 시간이 길었지만, 그녀는 끝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80세가 넘은 나이에, 세계의 미술관들이 그녀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2025년,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은 호주 유료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을 기록했고, 50만 명이 넘는 이들이 그녀의 무한의 방(Infinity Mirror Room)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
마침내, 세상이 그녀에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는 수십 년 동안 단 하나의 점, 단 하나의 선을 반복해 왔어요.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그 시간들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이 온 거죠.”
그녀는 독특함을 버리지 않았다. 외면당해도 끝까지 자기만의 세계를 지켰고, 그 고집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그녀의 작은 점 하나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녀의 인생이 묻는다.
“당신은, 당신만의 세계를 끝까지 지킬 수 있나요?”
쿠사마 야요이의 삶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진심이 있다면 결국 빛날 수 있다고. 유행을 좇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도 꿈에 이를 수 있다고.
그녀는 조용히, 우리 등 뒤에서 속삭이는 듯하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마. 그게 진짜 너라면, 늦게 피어도 그건 분명 너만의 계절이니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1만 번의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단번에 성공했다면, 그 빛은 잠깐 반짝이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더 오래, 더 밝게 빛나는 전구를 완성했다.
돌아서지 않고, 돌아가지도 않고, 정공법을 택한 그의 고집이 결국 전 세계를 밝혔던 것이다.
세상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재능은 일찍 드러나야 주목받고, 결과는 즉각 나와야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50대에 <브레이킹 배드>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쿠사마 야요이는 80대가 넘어서 세계 예술계의 중심에 섰다. 토마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 끝에 발명을 완성했고, 그 실패의 숫자마저 그의 철학이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것. 남들보다 눈에 띄지 않아도, 자기만의 방식, 자기만의 속도, 자기만의 고집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정신의 환영과 강박을 반복된 점과 패턴으로 예술로 승화시켰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수십 년을 조연으로 버텨내며, 언젠가는 주연이 될 날을 믿었다.
토마스 에디슨은 실패 속에서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9999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뿐‘이라며 웃었다.
그들의 시간은 느렸지만, 결과는 시대를 뒤흔들 만큼 강렬했다. 자기만의 리듬으로 걸어간 사람들, 자기만의 색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은 결국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리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꿨다.
지금 당신이 그 길을 걷고 있다면, 혹은 너무 늦은 것 같고, 아무도 당신의 점 하나, 선 하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그건 실패가 아니라, ‘정공법‘이라는 이름의 긴 호흡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들은, 대개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진심으로 준비해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지금은 아무도 몰라줘도, 당신의 고집은 언젠가 누군가의 영감이 될 것이다.
“늦게 핀 꽃은, 가장 오래 피어 있다.”
그게 바로 당신의 계절이고, 당신의 빛이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