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늦게 피는 꽃은 포기하지 않는다

12. 느려도 결국 도착하는 사람들-천천히 가는 것이 더 멀리 가는 길

by 유혜성

12장.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멀리 가는 길


속도는 성공의 기준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빨리’에 매달린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인정받고, 빨리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위대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길이 얼마나 느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번 챕터에서는 세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수많은 낙선을 겪고도 절망하지 않았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자신만의 질문과 사유로 세계를 바꾼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확신을 얻는다.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이 분명하다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걸어온 ‘자기만의 속도’는 오히려 깊이 있는 통찰과 고유한 색깔로 이어졌다는 것.


조지아 오키프: 나답게 피어 나는 법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진짜 나의 색은, 느리게, 그러나 또렷하게 피어난다.”

어릴 적 조지아 오키프는 유난히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아이였다. 평범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과 풀잎의 색,

빛이 사물 위에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말했다.


“오키프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이상한 아이야.”

그녀는 그림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림은 그녀가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언어였다.

하지만 20세기 초, 여성에게 예술은 안전한 길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려면 가정을 접어야 했고, ‘예쁜 정물화’나 그리는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여자 치고 잘 그리네.”

그건 칭찬이 아니라, 한계선이었다.


조지아는 뉴욕과 시카고에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마음은 점점 갈 곳을 잃었다.

전통적인 회화 수업은 너무 답답했고, 붓을 들 때마다 자꾸만 ‘틀’을 요구받았다.


그녀는 말없이 붓을 내려놓고 교단에 섰다.

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멀고 조용한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녀만의 세계’를 준비했다.


“이건 뭔가 달라. 근데… 좋은데?”


그녀가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였다.

뉴욕의 사진작가이자 갤러리스트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눈에 띄면서부터 그녀는 세상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선을 최소화하고, 색으로 감정을 표현한 그녀의 작품을 보는 순간, 스티글리츠는 말했다.


“이건 독창적이야.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림이야.”


그녀의 초기 추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뉴욕의 ‘291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너무 난해해.”

“여성의 감성이 과하게 드러난 그림.”

“꽃을 저렇게 그리다니, 너무 노골적이야.”


지금은 찬사로 남은 말들이, 당시에는 불편한 시선과 비판으로 다가왔다. 기존의 미술 평단은 조지아 오키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도 앞서 있었고, 많은 이들은 ‘그림은 예쁘거나 익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뉴욕을 떠나기로 했다. 조용한 사막, 뉴멕시코. 그곳에서, 그녀는 진짜 자신의 색을 다시 발견했다.


뼈가 마른 들소 해골, 붉고 거대한 양귀비. 무한히 펼쳐진 하늘 아래 그녀는 붓을 들었다.


“이건 내 언어야. 세상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꽃은 늦게 피었지만, 향기는 멀리 퍼졌다


조지아 오키프의 대표작 ‘붉은 양귀비(Red Poppy)’는 강렬한 붉은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멈춰서 말했다.


“꽃이 아니라 감정을 본 것 같아.”


그녀의 그림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내면의 울림이었다.


수십 년 뒤, 이 작품은 ‘여성 화가의 그림 중 최고가(4,440만 달러)‘ 에 낙찰된다. 사람들은 그제야 진심으로 말했다.


“그녀는 진짜였어.”


1977년,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1985년, 국가 예술 메달. 그녀의 예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이해되었고, 더 찬란하게 빛났다.

비록 세상의 인정을 늦게 받았지만, 그녀는 오래도록 기억될 예술의 향기를 남겼다.


조지아 오키프는 빨리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쉬운 길을 택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걸었고, 결국 진짜 자신을 찾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글을 쓰다 보니, 마치 그녀가 곁에서 말을 건네는 것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 속도는 나만의 것이었고, 내 그림은 결국 나의 이야기였어. 그러니 지금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아. 당신의 이야기도 반드시 피어날 테니까.”


그 말이 조용히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건 나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따뜻한 위로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넘어지는 건 실패가 아니야. 다시 일어나는 걸 멈출 때가 진짜 실패지”


밤이면 촛불 하나에 의지해 책을 읽던 아이가 있었다. 켄터키의 가난한 통나무집. 그곳이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의 시작이었다.

세상이 보기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부족한 소년. 하지만 그에겐 단 하나, ‘끝까지 가겠다’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그의 청년 시절은 ‘실패의 역사’라 불러도 무방했다. 가게를 차렸다가 문을 닫았고, 주 의회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두자’는 유혹은 수도 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음속에 다짐처럼 새긴 말을 떠올렸다.


“넘어지는 건 괜찮아.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돼.”


링컨은 멈추지 않았다. 독학으로 법을 공부했고, 결국 변호사가 되었다. 그가 법정에서 보여준 건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집요한 신념’이었다. 그는 변호를 할 때조차, 이기기보다는 ‘진실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들은 점점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말했고, 정치의 세계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1860년, 그는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지만 미국은 남북전쟁이라는 치명적인 갈등 속에 빠졌다. 북과 남은 갈라졌고, 서로를 향해 총을 들었다. 많은 이들은 타협을 원했다. 노예제를 일부 인정하고, 일단 전쟁을 끝내자고. 하지만 링컨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이 신념을 지킬 수 없다면, 우리가 지키는 이 나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의 결정은 거칠고 외로웠다. 암살 위협은 일상이었고, 친구였던 정치인들조차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에서 단 2분간의 말로 민주주의의 정의를 다시 썼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짧지만 그 울림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민주주의의 뼈대가 되었다.


결국 그는 미국을 하나로 묶었고, 노예제를 폐지시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룬 뒤, 그는 암살자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비극처럼 보이는 그의 마지막이지만, 사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다한 사람이었다.

죽음조차 그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링컨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몇 번이나 넘어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번 다시 일어났느냐가 너의 길을 만든다.”


그는 그 누구보다 많이 넘어졌고, 그 누구보다 끝까지 걸어간 사람이었다. 지금, 삶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있다면, 링컨처럼 다시 한번 일어나 보자. 실패는 끝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일 뿐이니까.

느리게, 그러나 가장 멀리: 고독 속에서 진실을 만나다, 아이작 뉴턴


사과 하나가 떨어졌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턴은 멈춰 섰다.


“왜 떨어질까? “


그 단순한 질문이, ‘세상의 비밀’을 발견했다. 그가 바로 아이작 뉴턴이다.


1642년, 한겨울. 아이작 뉴턴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 후 어린 뉴턴을 외가에 맡겼다. 그의 유년기는 고독했다. 하지만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그는 질문을 배웠다.


“왜 사과는 떨어질까?”

“빛은 왜 무지개로 나뉠까?”

“세상은 어떤 법칙으로 움직일까?”


뉴턴은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수가 적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사물을 깊이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과의 낙하에서,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 평범한 순간을 비범하게 보는 눈, 그것이 그의 진짜 재능이었다.


1665년, 흑사병이 번지자, 뉴턴이 다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문을 닫았다. 모두가 멈춘 그 시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뒤흔들 아이디어들을 떠올렸다.


2년의 고요한 시간. 그 안에서 그는 미적분학, 만유인력, 광학 이론을 세웠다. 인류 과학의 근간이 되는 발견들이 작은 시골집, 혼자만의 사색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는 늘 말없이 계산했고, 몇 년씩 한 문제를 붙잡고, 실험하고, 기다렸다. 세상의 비난과 의심에도 성급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깊이 파고들었고,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프린키피아>라는 한 권의 책으로 그는 우주의 질서를 정의했다.

만유인력, 운동의 법칙.

더 이상 세상은 신비가 아니었다. 수학으로 설명되는 세계였다.


그는 말했다.


“나는 그저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줍는 아이일 뿐이다.”


그 겸손한 고백 속에는, 진실을 향한 집요한 집중력이 담겨 있었다.


아이작 뉴턴은 빠르지 않았다. 주목받지 못했고, 오해와 질투도 받았지만 그는 조용히 자기 길을 걸었다. 고독을 견디며, 사물과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빨리 답을 찾기보다 진짜 질문에 머무는 걸 더 소중히 여겼다.

우리에게 유효한 뉴턴의 법칙


아이작 뉴턴은 말년까지도 완벽주의적 성향과 우울, 고립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고통을 감추지 않았고, 오히려 그 속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지켰다.


그의 위대함은 재능보다도 ‘집요함과 기다림’에 있었던 셈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뉴턴의 방식은 유효하다. 답을 급히 찾으려 애쓰지 말고, 질문과 친구가 되자. 빠르게 정답을 찾기보다, 깊게, 오래 생각하자.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

그 길 위에 분명히 서 있는 중이니까.


당신의 꽃은 시간을 알고 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30대 후반에 첫 전시를 열었다. 그전까지는 미술 교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끊임없이 실험했고, 뉴욕의 화려한 화단이 아닌, 사막과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자의 내면과 세계의 본질을 그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20세기 미국 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링컨은 수십 번의 낙선을 겪었다. 그의 청춘은 실패로 얼룩져 있었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국민의 절반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 걸음씩, 묵묵히. 노예 해방이라는 거대한 이상을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 느림은 역사를 바꾼 깊이가 되었다.


뉴턴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친구도 없고, 말을 잘하지 않는 소년이었지만 그는 혼자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중력을 이해했을 때도, 그는 세상의 관심보다 자신만의 질문과 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 느림은 결국, 과학 혁명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세상에 늦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계에 맞춰 살아간다.

남의 성공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자신을 자꾸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조지아 오키프처럼, 빠르게 인정받지 않아도 자신만의 색을 지켜낸 이가 있었고 링컨처럼, 수없이 돌아서도 끝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가 있었으며, 뉴턴처럼, 고요한 고독 속에서 세상을 바꿀 진실을 찾아낸 이도 있었다.


당신은 지금도 자라고 있는 중이다. 단지, 그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꽃이 피는 순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뿌리가 머물렀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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