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늦게 피는 꽃은 포기하지 않는다

11. 느려도 결국 도착하는 사람들~ 천천히 피어나는 성공의 의미

by 유혜성

11장. 천천히 피어나는 성공의 의미


처음부터 잘 되는 사람은 없다


“선생님, 혹시 웹툰 <미생> 아세요?”


수업 후 스트레칭을 하며 한 회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웹툰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그녀는, 웹툰 작가를 꿈꾸며 꾸준히 공모전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럼요. 직장인의 현실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죠. 드라마도, 원작도 인상 깊게 봤어요.”


그녀는 약간 안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작가님도, 20대에는 잘 안 풀렸대요.

30대 후반에야 미생으로 진짜 성공했다고 하더라고요. 천재들도 처음엔 다 그런가 봐요.

처음부터 잘 되는 사람은… 없는 거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 작가, 창작자들 중에 시작부터 완성형이었던 사람은 거의 없어요. 길게 보면, 성공은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그 이전의 준비와 인내에서 만들어지는 거죠.”


그녀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언젠가 이게 제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꿈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에게 건네는 간절한 질문처럼 들렸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확신으로 말했다.


“이미 시작한 것만으로도, 길 위에 있는 거예요. 누구보다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의 속도로 계속 걷고 있다면 그건 결국 ‘도달할 수 있는 길’이에요.”

그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던 순간, 나는 문득 나의 첫 필라테스 수업이 떠올랐다.


‘필라테스’는 처음부터 내 꿈도, 직업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운동이었다. 병원에서는 “만성통증”이라는 진단만 내렸고, 나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트를 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필라테스는 내 몸을 바꾸었고 그 변화는 곧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하루하루 수업을 쌓으며 어느새 나는 이 일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이 길을 걷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나도 그렇게 천천히 피어난 사람이었구나.”


처음에는 몰랐다. 이 일이 내 인생이 될 거라는 걸. 이토록 늦은 시기에, 전혀 다른 길에서 나만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걸.


그날 나와 대화를 나눴던 그녀처럼, 묵묵히 그리고 묵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모두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이 길도, 언젠가는 분명히 빛날 거라고.”


그리고 나 역시 그런 길을 걸어온 한 사람으로서, ‘천천히 피어나는 성공의 의미’를 말해준 ‘또 다른 이름‘ 들에 대해 전하려 한다.


바로, <미생>의 윤태호 작가와 마블의 새로운 세계관을 연 ‘스탠 리‘라는 이름이다.

오래 준비한 이야기꾼, 윤태호 작가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그저 유명한 웹툰 작가가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무명의 시간을 버텨낸 인내의 대명사다.

1993년 데뷔했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은 건 2000년대 후반이었다. 데뷔 후 10년 넘게 그는 끊임없이 만화를 그리며 현실과 싸워야 했다.


그 시절 그는 평범한 생활인을 그리는 것이 만화가 될 수 있을까, ‘재미’보다는 ‘공감’을 말하는 만화를 그려도 될까 자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범한 계약직 직장인 ‘장그래‘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말 걸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아직 미생이다.”

그 한 마디는 수많은 청춘과 직장인의 가슴을 울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 미생(未生).’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는 아닐까?


윤태호 작가는 <미생>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까지 아주 오랜 세월을 꾸준히 걸어야 했다.

생활고와 무명의 시간을 견디며,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목받지 못한 시간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2007년 웹툰 <이끼>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진짜 전환점은 2012년 연재한 <미생>이었다.

윤태호 작가는 <미생>을 통해 ‘아직 살아가는 중’인 우리 모두의 성장통을 말없이 안아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 앞에서 울었다.


그가 성공한 이유는 단지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리듬으로 꾸준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윤태호 작가는 늦게 피었지만, 오래 남는 작가다. 빠르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서사는 깊었다. 그리고 그 깊이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나 역시 처음엔 몸이 아파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저 아프지 않기 위해,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꿀 줄은 몰랐다.


남보다 늦은 시작, 처음엔 두려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지만 하나씩, 아주 작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움직이다 보니 내 안의 에너지가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곳에서 ‘또 다른 미생‘들을 만나고 있다.

불완전한 영웅의 창조자, 마블의 스탠 리


마블 코믹스의 전설, 스탠 리(Stan Lee)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40대가 되어서야 우리가 아는 히어로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20대부터 만화 업계에 몸담았지만, 진짜 전성기는 40대 이후였다. 당시 미국의 히어로물은 전형적인 영웅상만 반복했다. 완벽하고 강하고 정의로운, 그런 영웅.


하지만 스탠 리는 달랐다. 그는 인간적인 약점과 고민을 가진 영웅을 만들고 싶었다.


10대 히어로 스파이더맨, 우울증을 겪는 아이언맨,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헐크, 소외당한 엑스맨…


그의 아이디어는 처음엔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히어로가 우울증에 걸린다고? 그걸 누가 좋아하겠어?”

“10대 히어로가 통하겠냐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직관을 믿었다. 결국 그는 불완전한 영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가 만들어낸 마블 유니버스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왜일까?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이겨내는 존재’에 끌리기 때문이다.


“나는 40이 넘어서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인생은 나이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용기로 시작하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나도, 이 필라테스를 30대 후반에야 진심으로 시작했으니까. 내가 가르치는 회원들도 대부분 한참을 돌아오거나,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용기를 냈고, 그 선택이 결국 그들의 몸과 마음을 살렸다.


스탠리는 90대 중반까지 살았다.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메시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또 다른 미생들이다. 완전하지 않아도, 때때로 흔들려도, 계속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게 바로 진짜 영웅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회원들에게 말한다.


“당신은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다만, 그 길이 남보다 조금 느릴 뿐이에요. 하지만 느리게 걸을수록 더 많은 걸 보게 되죠. “

창작자들과 회원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속도


요즘 웹툰과 웹소설 시장이 커지면서, 나는 다양한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전에는 회사원이었거나, 전혀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30대, 40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싱숑, 〈나 혼자만 레벨업〉의 추공, 〈신의 탑〉의 SIU 작가처럼 말이다. 그들의 성공은 운이 아닌 꾸준함의 산물이다.


필라테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유로 문을 두드린다.


“선생님, 저만 너무 느린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속도가 안 붙고 코어 힘이 안 생기죠? “


회원들의 푸념에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지금은 좀 느리다고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당신의 코어 힘은 우리 몸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대나무는 처음 몇 년 동안 땅 위로는 전혀 자라지 않아요. 대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죠. 그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 갑자기 그 뿌리가 힘을 모아 단숨에 위로 솟구쳐요.


우리의 코어 힘도 그래요. 당장은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어느 날, 몸이 먼저 말해줄 거예요. 그건 당신이, 진짜 힘을 기르는 중이라는 증거니까요. 그때가 오면, 지금의 느림이 얼마나 깊은 준비였는지 알게 될 거예요. “

내가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내 몸도, 내 삶도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팠고, 지쳤고, 무엇보다 방향을 몰랐던 시절. 그런데 어느 날, 몸이 먼저 말해줬다.


“이제 괜찮아졌어. 나 여기 있어.”


누구나 인생에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는 자라고 있다.


나는 오늘도 회원들에게 말한다.


“지금 느려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당신이 당신만의 리듬으로 걷고 있다는 거예요.”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만 뒤처진 건 아닐까?”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한다고?”

하고 불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조금 늦었다고,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느껴질 때, ‘윤태호의 미생’을 떠올리자. 그리고 ‘스탠 리의 늦은 봄‘을 떠올리자.


그리고 당신의 지금을 믿자. 봄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어떤 꽃은 늦게 피어도 자기만의 때에 가장 빛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안에 씨앗은 자라고 있다.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당신의 의지가 흙을 밀어 올릴 때, 씨앗은 반드시 피어난다.


결국,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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