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늦게 피는 꽃은 포기하지 않는다

9. 느려도 결국 도착하는 사람들: 당신의 속도로 피어나는 꽃

by 유혜성

9장. 당신의 속도로 피어나는 꽃


그녀는 늘 앞만 보고 달렸다. 학창 시절에도, 사회에 나와서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함을 손에 쥐었을 때도. “멈추면 뒤처진다”는 말을 진리처럼 믿었고, 잠깐의 쉼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몸이 먼저 멈춰 섰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아무리 자도 피로는 쌓여만 갔다. 병원에서 돌아온 날,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걸까?”


그렇게 그녀는 필라테스를 만났다. 처음엔 단지 재활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기구 위에 조용히 누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발끝 하나, 손끝 하나까지 정성을 다하는 동작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았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남들과 같은 길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속도로 피어나는 중이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 나갔다. 자신을 미워했던 시간들을 안아주고, 비로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당신의 계절이 따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빨리 해야 한다”는 말에 둘러싸여 자라난다. 빨리 말을 해야 하고, 빨리 성적을 올려야 하며, 빨리 취직하고,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세상의 시계는 늘 ‘조급함’이라는 이름의 초침을 휘두르며, 마치 모든 이가 동일한 시간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을 보면 알 수 있다. 벚꽃은 4월에 피고, 해바라기는 여름이 되어서야 고개를 든다. 가을에 피는 꽃도 있고, 심지어 눈 내리는 겨울 속에서 피는 꽃도 있다. 꽃은 계절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가장 적절한 때에 피어날 뿐이다. 당신이 지금 느리게 걷고 있다면, 그건 실패나 뒤처짐이 아니라 자신만의 계절을 준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필라테스 강사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도 한때는 방향을 잃은 사람 중 하나였다. 세상의 속도에 뒤처진 채,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두려워하던 시간들. 그러나 그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배웠다. 늦게 핀 꽃은 더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하고 있다.

조급함 대신 기다림을, 성과 대신 과정을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자신만의 속도로 피어날 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1. 그녀는 너무 열심히 달렸다


그녀는 언제나 불안했다. 조금만 느려지면 세상에 뒤처질까 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학생일 땐 성적을, 직장에선 성과를, 삶에선 의미를 증명하듯 살아야 했다.


늘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삶은 멈춘 시계처럼 고요해졌다. 많은 걸 이루었는데도, 마음이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처음,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처음엔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픈 데가 느껴졌고, 긴장된 근육이 조금씩 풀려갔다. 그리고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나를 너무 몰아세웠구나.”


그녀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천천히, 그러나 자기 속도로.


이제, 그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필라테스 강사로 살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지금이라도 괜찮아요. 당신의 속도대로, 당신의 삶을 살아도 돼요. “

2. 커널 샌더스:1009번의 실패 끝에 다시 튀긴 치킨


KFC의 창업자 커널 샌더스(Colonel Sanders)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는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태였다. 돈도, 명성도, 확실한 미래도 없었다. 오직 자신이 개발한 프라이드치킨 레시피 하나만 들고, 그는 다시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도전은 ‘성공’보다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는 40대에 주유소를 운영하며 손님들에게 치킨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치킨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주유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사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그리고 65세. 보통 사람이라면 은퇴하거나 ‘이제 그만해야지’라고 말할 나이.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 안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조리법 하나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1,000곳이 넘는 식당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1,009번의 거절.

“우린 관심 없어요.”

“그냥 돌아가세요.”

“맛은 있는데, 굳이?”

모두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010번째.

한 식당에서 그의 닭을 맛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특별하네요.”


그 말 한마디가, 닫혀 있던 세상의 문 하나를 열었다. 그 순간부터 멈춰 있던 바람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것은 곧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마침내 지금의 KFC로 이어졌다. 이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치킨을 즐기고 있다.


커널 샌더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늦게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때가 내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는 말해준다. 인생은 정해진 시간표로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 자신의 때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남들보다 느려도, 수없이 돌아가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어디에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가 아니라, 그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커널 샌더스도 자신의 속도로 살아냈다. 그리고 결국, 세상은 그의 리듬에 맞춰주기 시작했다.


나는 커널 샌더스의 이야기를 쓰며 문득, 이 말을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인생은 지름길이 아니라, 지향점이에요.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아요. 조금 멀리 돌아가도 괜찮아요. 결국,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 도착할 거니까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라고.

3. 줄리아 차일드: 서툰 칼질로 시작된 요리 인생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는 요리계의 전설이다. 하지만 그녀의 요리 인생은 놀랍게도 30대 중반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그녀는 미국 외교관의 아내였고,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따라간 프랑스에서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

향신료 향이 가득한 시장,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는 셰프의 손길, 깊은 국물 속에 우러나는 감칠맛. 그녀는 요리라는 세계에 매혹되었고, 처음으로 ‘이걸 진짜 해보고 싶다 ‘는 열망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된 요리 공부. 하지만 파리의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에서는, 그녀는 단지 ‘미국인 주부’, 그것도 ‘늦깎이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무시했고,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서툰 칼질로 시작했지만, 매일 연습하며 레시피를 다듬었고,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 결과, 무려 10년에 걸쳐 미국 가정주부를 위한 프랑스 요리책을 집필했다.


출판사에서는 “누가 프랑스 요리를 집에서 하겠냐”며 거절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50세가 넘은 나이에 그녀는 미국 최초의 요리 방송 진행자로 데뷔했다. 주방에서 칼질을 하던 그녀는 이제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요리는 감각의 예술이에요. 속도로 하는 게 아니에요. 삶도 마찬가지죠. “


나는 줄리아 차일드의 이야기를 쓰면서 마치 내 얘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기자, 교수, 다양한 길을 걸어오다 뒤늦게 필라테스 강사의 길을 선택했다. 많이 돌아왔지만, 지금은 그 길 끝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마음의 평온을 느끼고 있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케어하고, 이렇게 다시 글을 쓰며 당신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면, 그건 늦게 발견해도 인생 최고의 선물이에요. “라고.

4. 버지니아 울프: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글을 끝까지 쓴 여자


버지니아 울프는 지금은 문학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지만 그녀가 글을 쓰던 20세기 초반의 영국은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낯설고 불편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문단은 철저히 남성 중심이었고, 여성 작가는 ‘주체적인 글’을 쓰기보다 조용히 머물기를 요구받았다.


그녀는 그런 세상의 틀을 흔들었다. 평생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으며 힘든 내면의 시간을 보냈지만,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글이란 세상과 싸우는 무기이자, 자신을 지켜내는 방패였다. 그녀의 인생 전환점은 30대 중반 이후였다.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올란도>(1928), 그리고 여성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자기만의 방>(1929)은 모두 그녀가 마흔을 전후해 발표한 작품들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생전에 이미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40대 이후 진정한 문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공간과 경제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도 스스로의 목소리로, 주체적인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결코 가볍게 소비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깊게 읽힐수록 오래도록 남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문장은 많은 이들에게 속삭인다.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나를 믿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을 때마다 조용히 마음속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빠르게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리듬으로 써 내려간 그 문장이 결국 세상을 바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리듬이 있다. 때로는 천천히 도달하는 길이 가장 깊고 단단한 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목소리는 느리더라도 반드시 도착할 거예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당신만의 문장을 끝까지 써보세요.”라고.

5. 그리고… 그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준 그녀. 지금 이 순간,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을 케어하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 그녀는, 나였다.


나 또한 늦게 시작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길에서 나는 한참이나 뒤처진 줄로만 알았다. 무언가 이뤄야 할 것 같고,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를 몰아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누구보다 나답게, 나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몸이 바뀌고, 마음이 열리고,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러 왔다가 자신을 회복하고, 또 누군가는 울고 나서 처음으로 웃으며 돌아간다.

그걸 볼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그게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다.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다.


6. 시작은 지금이어도 괜찮아요


KFC의 창업자, 커널 샌더스도 그랬다. 65세, 단돈 105달러 수표 한 장을 들고 세상에 나섰다. 1,009번의 거절을 겪은 뒤, 그의 치킨은 ‘세상의 맛’이 되었다. “늦게 시작했지만, 진심이었기에 가능했다”라고 그의 이야기는 말한다. 진심은, 어떤 시간도 낭비로 만들지 않는다는 걸 그는 증명해 냈다.


줄리아 차일드는 평생 요리를 몰랐다. 36세가 되어서야 프랑스 요리에 반했고, 그때부터 칼질부터 배워나갔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전설이 되었다. 요리를 사랑하게 된 그 순간, 그녀의 인생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홀로였고, 외로웠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지키기 위해 매일 쓰고, 매일 견뎠다. 세상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고독 속에서 그녀는 지금도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 남들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바로 나는, 수많은 돌아섬과 멈춤 끝에 필라테스라는 길 위에 섰다. 몸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마음을 통해 인생을 돌보는 이 길을, 나는 늦게서야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모든 늦음이 결국 나를 정확히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어쩌면 조금 늦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피지 못한 채 움츠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정말 괜찮다.

늦게 핀 꽃은 더 깊고, 더 향기롭게 오래 피어난다. 지금 막 움트는 당신의 마음도, 당신의 걸음도,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시작의 계절일지도 모른다.


늦게 핀 꽃, 슬로 스타터.

그건 뒤처진 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리듬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도, 당신은 당신의 속도로 걸어가도 된다. 나는 여기에서, 글을 쓰며, 필라테스를 가르치며, 조용히 당신의 걸음을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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