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만의 단편

<2020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by 수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첫 작품인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 너무 좋아서 다음 글로 넘어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구김살 없이 해사한 면상’을 가질 수 있는 ‘아들’이라는 위치, 그 특권인 줄 모르는 권력.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높낮이 의자에 앉은 이들처럼 감당하고, 숨겨오고, 상처에 눌려온 여성들. 그래서 그 가족의 역사를 잘 모르는데도 단박에 캐치해버릴 수 있는 ‘다른 집’ 가족•여성이었던 며느리, 나. 강화길 작가의 <음복>은 순식간에 온 몸의 기운이 눈으로 쏠린 듯 물기와 입술을 깨물게 하는 감정을 만들었다. 이 소설을 읽었다면 누구라도 그녀의 다음 작품을 너무나 기다리지 않을까? 나와 비슷하게 이 글을 읽고 멈춘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두번째 수록작품은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이다. 용산참사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듯한 그러나 결코 가볍지도 날 것 그대로도 아닌 것으로 가지고 여성의 서사를 그리고 있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또 울고 말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더 울고 말았다.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내가 그 상황을 알 수 없지만 그게 너무 아파서. 그리고 그의 입에 맴도는 ‘우리’라는 말을 공감하며 눈물이 자꾸 삐져나왔다. ‘어떤 사실은 종종 삶을 매우 슬프게 만든다. 나를 억압하는 인식들은 어떤 구조 속에서 사실로 굳어졌을까. 그것이 삶을 망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만큼 부정하고 또 인정해야 할까.’라는 선우은실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지금-여기의 우리를 생각한다. 부당함를 그냥 참으라는 것이 아니고 저항하고 싸우지만 현실 속 존재하는 이 부당함을 부정만 하면서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지, 그리고 그것만이 나를 서게 하는 것일지, 눈 앞에 보이지 않을 무수한 맥락과 사람들의 이유와 이야기들이 서글퍼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최은영 작가의 글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다. 그러면서 나도 살아가고 싶다. 나의 세대와 비슷하다 생각되는 한국 여성 작가들의 글이 정말 날로날로 기대가 되고 사랑하게 된다.

이현석이라니, 하며 생각치 못한 이의 이름을 만난 이현석쌤.. 아니 이현석 작가의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소설인지 칼럼인지 모르겠는 구성 같았다. 아마 그것은 낙태죄를 둘러싼 여러 논의가 비교적 최근이지만 내게도 먼 이야기만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배틀그라운드’를 읽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만나 확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역시 그랬을 거란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이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물음과 고민을 던져줄 것 같아서도 반가운 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게 그는 작가보단 대구에서의 어떤 삶의 시간 속에 일부분 겹치는 사람으로서 그의 여행 에세이나 그 이후 등단 소식에 이어 이번 작품집 수록까지 그의 글이 계속 되는 것, 그리고 그 결이 다양해져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외에 장애학에 관심을 갖지 시작했다는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은 보편이란 말이 어떤 지점을, 누군가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사회에서 규정한 ‘마땅한’ 정상성’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이브는 접근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어느새 잊혀지고말 비-보편성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른 공간, 다른 대안, 다른 세계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애초 정상이라 여겨졌던 그 세상의 허구에 생각해보는 것, 질문을 던지는 것, 균열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 김초엽 작가의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장류진 작가 ‘연수’는 그간 친구들로부터 들어온 운전연수 경험들이 생각난다. 모르고, 처음이라 배우는 이들에게 윽박지르기 일쑤인 폭력성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운전에 있어서 부정적인 상황에선 아무렇지 않게 전제되고 발화되는 여성혐오에 대해서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여자라서, 할 수 없고 못 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를... 이젠 누군가에게 너무 진부할 그 명제를 다시 한 번 끄적이고 싶은 것이다.

이번 수상작품집에서는 처음 읽는 작가는 마지막에 수록된 장희원이었는데, 그는 2019년 등단했다. 그의 ‘우리의 환대’는 사실 꽤나 많은 경우 한 단면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전제하며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래서 거기서 조금만 튀는 무언가가 생기면 눈이 커지면서 의심과 눈치 속에 놓인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무조건적 환대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별 수 없이 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을까? ‘우리’라는 것은 그 ‘우리’이지 않은 이들을 배경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그토록 ‘우리’, ‘우리’하는 나는 가슴이 순간 찔리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치만 작가의 말에 그가 쓴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곳이 옳다.” 문장을 기억하며 우리이든, 내가 모르는 당신이든, 누군가이든을 위해 생각하고 싶다. 나는 여러 상상을 할 수 있고, 퀴어한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여러 형태를 우리가 상상하고, 그걸 넘어 아무렇지 않게 같이 흐를 수 있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