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이름이 있다. 친구가 그 이름을 넣어 그린 그림을 선물해주어 멋진 액자도 있다. 집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벽면에 액자가 걸려있다. 형광색의 색깔이 번지듯 그려있는 것이 밝은 기운을 준다. 그 액자는 효에게 생일 선물로 받았다. 그림 옆에는 무지개 실로 엮인 드림캐처가 걸려 있다. 그것 역시 생일 선물로 산이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 집은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준 다채로운 색깔의 그림과 드림캐처는 우리 집과 너무 잘 어울린다.
우리 집의 이름은 ‘느집’이다. 매번 1-2년 간격으로 이사를 해왔는데, 처음으로 그 규칙 아닌 규칙이(규칙이라면 비자발적 규칙이겠다) 깨졌다. 지금 사는 집에 횟수로 4년이 넘게 거주하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이사 없이 같은 집에서 4년 이상을 사는 장기 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청소년 시절에도 이렇게 오래 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해서 그런가, 나에게 이런 장기 거주는 무척 신기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집이라고 하지만, 내 집은 아니다. 자가도 아니고 전세도 아니고 매월 월세를 보내는 월세 집에 살고 있는데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월세 변동 없이 처음 계약할 때 집세 그대로 살고 있다. 이 집이 마음에 들지만, 집 주인이 월세를 올리면 이사를 갈 테야!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다. 월세가 오르면 이사를 하겠다고 다짐 했어도, 이사란 것은 쉬운 일이 아닌 중노동의 것이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는 계속해서 새 아파트가 생겨나고 있고, 그 속에 내가 살아가는 아파트는 점점 더 낡아져가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집을 팔고 싶어 하는 집주인의 소망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의 느집 생활은 그만큼 늘어나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 이름을 만들기로 했다. 오래 고민한 것은 아니고, 이전에 살았던 주거공동체집인 물음표집에서 힌트를 따왔다. 동생과 살고 있는 현재의 집은 비록 물음표집처럼 원가족이 아닌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주거공동체의 모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친구들과의 공간으로 쓰임 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붙인 우리 집 이름은 ‘느낌표집’이다. 물음표집을 줄여서 물집이라고 부른 것처럼 느낌표집을 줄이면 느집. 집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전 붙였던 임시 이름 물음표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같아 그 집의 정체성이 되고 이름이 되었듯 지금의 집은 그때보다는 조금 더 물음표의 의문에서 나아간 것 같아서, 느낌표가 되었다.
나는 집의 이름을 정하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 친구들은 우리 집 비번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집에 이미 많은 시간을 머무른 사람들이었다. “이제부터 우리 집 이름은 느낌표집, 줄여서 느집이야!”라는 내 말에 친구들은 너네집의 사투리 버전인 ‘느네집’, ‘느거집’이라 이름 붙였다. 우와! 나는 느집의 그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과 나를 분리시키지 않는 친구들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이 농담 삼아 붙인 이름으로 우리 집 이름은 더욱 완벽해졌다. 내 친구들의 집, 느낌표집, 느집. 네, 저는 느집에 삽니다.
2017년 2월,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광주에서 살던 21살 1년의 시간을 제외하면, 생애를 통틀어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집다운 집이었다. 욕실도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집에 살던 시절이 있었던 나와 동생에게 그 모든 것이 제대로 있는 집. 이 집에 이사 오면서 처음으로 중고가 아닌 새 제품을 샀다. 사실 나는 그때도 중고로 가전제품을 사려 했지만, 같이 살게 된 동생과 엄마가 극구 반대하면서 나를 설득하기 위해 선물을 만들어 와서 나도 그 김에 넘어갔다. 내가 냉장고를 새로 사는 대신 엄마가 새 가스레인지를 사주었고, 사촌오빠가 새 세탁기를 사주었다. 물론 우리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도 친구 거고, 에어컨도 옷장도 중고이지만 처음으로 새로 장만한 것들이 생긴 집이다.
20평이 조금 넘는 느집은 방 두 개, 주방, 필요에 따라 방도 되고 거실도 되는 공간이 하나, 욕실, 베란다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안방이라고 불렸을 가장 큰 방을 동생이 사용한다. 그 전의 집에서는 가장 큰 방을 내가 사용했는데, 그건 대체로 나의 친구들이 집에 방문하고 머무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방문은 변함이 없었지만, 이번엔 똑같은 이유로 가장 큰 방을 동생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주로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의 친구들이거나 나와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공간이 충분했으면 하는 동생이 가장 큰 방을 사용하는 것이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느집에는 여전히 이불도 베개도 칫솔도 잠옷도 여분의 것들이 늘 존재한다. 이 집에 거주하는 사람은 나와 동생뿐이지만, 자주 친구들이 찾아오고 자주 그들이 이 집에서 같이 잠을 잤기 때문이다. 우리는 느집에서 각자의 생일을 축하했다. 내 생일뿐 아니라 벌써 몇 년째 우리 집에서 자신의 생일 축하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도 있을 만큼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오는 소중한 시간들을 이곳에서 함께 보냈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졌고, 명절을 함께 보냈고, 누군가의 새로운 일자리를 축하했고 퇴직을 응원했다. 친구가 아플 때 느집에서 휴식을 취했고, 내가 없는 다른 일정을 소화한 후 자고 가기도 했다. 우리는 이 집에서 책모임을 하고, 보드게임을 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셨고,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 내일이 불안한 삶을 살고 있고 플러스 보다 마이너스만 늘어가는 삶이지만, 지금의 삶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느집을 느집답게, 그러니까 느낌표 집답게, 느네집답게 만들어준 곁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 넓지 않은 느집의 거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우리가 나눈 수많은 시간들은 흘러가면 그만인 것들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 나를 더 성장시킨다.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 있대도’ 구와 숫자들 노래 가사처럼. 나와 친구들이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온 것들이, 우리가 서로에게 준 사랑들 덕분에 나의 작은 꿈은 조금씩 자라나고, 안전하게 지켜진다. 오늘도 우리는 지도에는 없는 마을, ‘느집에서 함께 성장하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