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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_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by 수수

친구가 다음 모임책으로 한정현 작가의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소설을 읽자고 했다. 작년에 친구에게 받은 <줄리아나 도코>를 읽으며 책 내용은 밝음의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그의 소설이 좋아서 마음에 들었던 터였다. 이 독특한 소설을 읽으면서 한정현 작가는 더욱 쉽게 써도 되는 길을 매우 어렵게 간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이 싫지 않았다. 쉬울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쉬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빨치산 내 존재했던 성적 폭력, 현대 사회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성적 폭력, 성소수자 차별혐오와 폭력, 인터섹스·트랜스젠더에 대한 폭력, 남성중심사회가 만드는 여성들에 대한 성적상품화와 대상화, 불법 촬영 등 무수한 성적 폭력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슬프게도, 아니 분노스럽지만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존재하지 않고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책을 읽는 게 힘들었지만, 놓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읽으면서 무척 힘들고 힘들어서 읽지 않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 읽어내기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회 운동 공간에도, 대학 공간에도 또한 연애가 이성애이건 동성애이건 스포츠이건 사회주의 빨치산 내부이건 어디서든 일어난 성적 폭력. 성적 폭력은 정말 그야말로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성소수자란 이유로 왜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는가. 여성이란 이유로 왜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는가.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하던 혁명 동지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남자와 강제로 결혼했던 춘희, 임금을 달라는 정당한 요구만으로도 구금되고 성폭행 위협을 당했던 영옥(설영의 할머니),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급생들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이후로 친구들에게 고립됐던 도영, 불법 촬영의 피해자이면서도 도리어 동료들에게 협박받는 셜록… 이 폭력의 계보는 정상과 비정상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배제하는 국가•의료•교육•치안 시스템을, 그리고 젠더/섹슈얼리티가 그 분할에 있어 강력한 기준의 하나임을 드러낸다.(386-387)’는 해설처럼 이 책에서 남은 자들인 설영과 연정은 이 반복된 폭력의 구조를 잇는 기록자로서 소설에 존재하기도 한다.


김초엽 작가는 한정현 작가의 소설의 추천사에 “기억이 금지당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할 것을 기억하면서”라는 문장을 남겼다. 리베카 솔닛의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이란 책제목이 생각났다. 기억을 금지당한, 그리하여 존재하나 세상에 없다고 여겨진 존재들이 있고 그 존재들의 기억이 있다.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그 기억을 공유하고 만들어가는 이가 있다. 설영과 연정은 남은 자로서 잊지 않고 이어나가는 자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싸움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하여. “숨어버리고 마는 것이 약한 사람들, 여자들과 성소수자들과 노인과 아이와...... 결국 우리”였던 구조를 바꾸기 위하여.


소설 속 그(녀)들을 만나면서 우리도 추리-탐정-기록자가 되는 연대자로서 함께 하자. 진실을 잊혀 지도록 두지 않는, 세상에 존재했으나 지워진 그 이름들을 찾아 그 이름들을 부르고 기억하자. 우리가 퀴어를 전복적으로 나의 언어로 가져오고 우리의 자긍심을 찾아왔듯이, 그래! 우리 이제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셜록에의 응답은 사랑, 이라는 것을. 그리고 제/당신의 사랑은 이성애만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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