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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y 08. 2024

오늘도 나무에 오릅니다

마거릿 D. 로우먼_ 오늘도 나무에 오릅니다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1장을 읽다가 페미니즘 활동으로 만난, 지금은 탐조에의 길을 걷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페미니즘적으로 탐조에 대해 이해를 시도하거나 사유해볼 수 있는 자료에 대해. 사실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다양한 갈래에서 뻗어나왔겠지만, 주변에 새를 좋아하고 탐조를 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궁금해졌다. 그것 역시 전문성외에도 페미니즘/젠더 감수성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되어서. 혹은 발을 들였는데, 느껴지는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이 책 이야기가 나왔다. 위로 받았다고. 앞서 말한 책의 영향으로 탐조(뿐 아니라도)와 페미니즘적 사유에 대해 궁금해졌기 때문에 관심도가 그랬다 보니 이전에 탐조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 친구가 말한 위로가 어떤 것이었을지, 또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면서 진행하는 탐조와 더 깊이 연결되어보려는 시도에 대해 궁금해져 책을 읽고 만나기로 했다.


생물학 그 중에서도 식물학자 중 저자가 활발하게 현장에 있던 시기에는 여성학자/동료들이 없었다. 자신 역시 자신이 여성이어서 어떤 것이 다를지 몰랐으나 나무에 오르고 연구를 하며 여성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나, 저자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성별 이분법이 강한 호주의 시골의 남성과 결혼하게 되는데, 다른 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서 한 결혼이지만, 가사노동과 임신•출산•육아는 오롯하게 자신의 몫, 마땅한 역할이 되고 연구를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는 선택했다. 연구를 이어가기로. 그러기 위해서 그는 첫 번째 결혼에 마침표를 찍어야했다. 결혼뿐 아니라 연구하는 현장에서도 여성이기에 겪는 일들에 대해 이 책 곳곳에 에피소드들처럼 흐른다. 여성 목수에 대해 다룬 책이었나. 거기서도 화장실 등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너무나 남성중심 아니 남성의 공간만 당연시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식물학자로서의 그의 작업은 나에게 어려운 이해 투성이긴 했지만, <휘말린 날들>의 작업처럼 과학의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기존의 틀을 다시 사유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젠더 감수성, 퀴어하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오늘도 나무에 오릅니다>,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유시주 옮김, 눌와


p28 그러나 1970년대의 호주는 백인 남성에게는 '행운의 나라’ 였을지 몰라도 미국인 여성 과학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문화적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호주에는 성역할을 엄격히 구분하는 후진적 관습에다가 환경 보존 같은 문제는 도의 시했던 19세기 말 미국 서부와 견줄 만한 개척 정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p31 오늘날 헝겊 조각으로 여기저기 기운 것처럼 군데군데 떨어져 분포해 있는 우림(많은 경우 가파른 협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은 인간의 개발에 따른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진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p77-78 인간은 지난 100년 동안 호주의 산과 들을 크게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잎병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인간은 산림의 많은 부분을 인정사정없이 벌채했으며, 풀을 뜯어 먹고 사는 가축들, 주로 양과 소를 길러 땅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토종 풀을 먹고 사는 생명체들을 감소시켰고, 벌채와 개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기 전 그곳의 나무에 서식하던 토종 새들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변화 하나하나가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보자. 양과 소를 들여옴으로써 흙이 다져지는 패턴과 소비되는 풀의 종류가 달라졌다. 가축의 배설물을 통해 흙으로 돌아가는 영양소의 순환에도 변동이 생겼다. 나아가서는 무리를 지어 먹이를 뜯는 양의 습성 때문에 초지에 따라 풀이 뜯어 먹히는 정도가 달라졌다. 가축은 호주 경 제의 대들보로서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한 데다가, 캥거루와 왈라비 같은 토종 초식동물과는 먹이 습성이 다른 관계로 자연환경을 악화시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그리고 토끼, 토끼는 인간이 불러들인 또 다른 경제적 재앙이다)이 유칼립투스 묘목까지 갉아 먹음 으로써 재생산에까지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었다.


p80 호주 학계에 지혜로운 조언을 해줄 만한 여성 멘토가 있었더라면 내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잎병이 그러하듯이 생의 한가운데, 그리고 일의 한가운데에 있는 여성들의 정서적 선택은 복합적이며, 어느 한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p167-168 호주 농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전통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일단 아기가 태어나면, 여성은 자기 시간의 대부분을 육아와 가사에 바쳐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과학자가 되기 위한 열망으로 열심히 연구하는 데 바쳤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박사학위를 소지하게 된 사람이다. 나로서는 그와 같은 불합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p194 육아와 과학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던 시절을 돌이켜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을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한다면 나를 위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경력도 다채로워졌지만 개인적인 생활을 누리거나 한두 가지 취미를 즐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나는 그러한 개인적인 공허감에 대해서는 좀 더 늙은 뒤에 응답하기로 하고 그 생활을 감수했다.

 2월이 되자 남편은 대학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3월이 가기 전 호주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그만하면 됐어."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결정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행복했으며, 나는 계약을 잘 완수해서 학기를 마치고 싶은 마음이 확고했다. 그러나 계약을 채우고 가겠다는 결심은 호주 식구들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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