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회비빔밥과 소곱창전골, 매력적인 식육식당
임진왜란, 논개, 촉석루, 김시민 장군, 진주성 전투, 남강...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가? 질문 안에 유도질문이 있는 것을 보셨듯이 물론 경상남도의 전라도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인 진주가 머릿속에 떠오르실 것이다(아... 아니면 말고....).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임진왜란의 명전투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를 잘 아실 것이며 그 이후 이어진 논개의 희생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인데, 사실 식도락가들에게는 진주하면 떠오르는 것은 냉면, 육회, 육전 그리고 꿀빵(육전은 광주와 전라도, 꿀빵은 통영이 더 이름이 있지만 진주에서만 즐겨먹는 음식이다. 전라도와 가까운 지리적인 특성 때문일까)이다. 특히나 진주냉면은 함흥, 평양에 이은 조선 3대 냉면 중 하나로 양반님네들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냉면으로 유명하다. 갖은 해물로 우려낸 짭짤하고 감칠맛 넘치는 육수와 달걀지단, 실고추, 육전, 절인 무 등으로 푸짐하고 다채롭게 꾸민 진주냉면 말이다 (해물육수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진주 유등축제와 중앙시장의 제일시장에서 육회비빔밥을 즐겼던 어렴풋이 젊은 날의 기억이 있는 도시다. 이제는 나이를 10년 정도 더 먹은 후에 이쁜 여자의 고운 손을 마주 잡고 부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 정도를 달려 진주에 도착했다. 장대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은 상권이 많이 가라앉아서 한적한 지방 터미널의 느낌이지만 그곳에서 조금만 걸어 시내 안쪽으로 들어오면 시장, 대형 프랜차이즈, 백화점, 세련된 카페 등이 어우러진 거리를 걸을 수 있다.
이쁜 여자와 나는 터미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남강 근처에 자리 잡은 진주성 탐방을 먼저 하기로 했다.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았던 유적이 발굴된 진주성은 현재 그 앞이 문화재 발굴 사업으로 인하여 공사 중이지만 그 내부의 의암이나 의기사(논개 영정 및 사당), 국립진주박물관 등 내부를 구경하고 공원처럼 산책도 할 수 있으니 나는 이쁜 여자의 손을 잡고 진주성 내에서 바람, 강, 햇살이 어우러진 시간을 즐기다 망경동에 자리 잡은 오늘의 목표로 향했다.
'망경식육식당' 말 그대로 진주시 망경동에 자리 잡은 정육점을 함께 운영하는 고깃집이다. 경남 진주가 고향이신, 강릉에서 '로 스푼티노'라는 이탈리안 간식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께 추천받은 곳이기 때문에 맛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고 누가 봐도 한적해 보이는 이 동네로 향했다. 방문했던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라 당연히 사람은 많지 않았고 매장을 보시는 아주머니께서 식탁에 엎드려 주무시고 계셨다, 내가 흔히 아는 오후 3~5시 사이의 고깃집 풍경이다.
우리는 진주의 명물인 육회비빔밥을 시켰는데, 그러려고 메뉴판을 보던 중 한우 소곱창의 가격이 생각보다 꽤 저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 이 정도면 내가 시장에서 수입 소곱창을 사서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싼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쁜 여자와 짧은 합의를 거친 후에 우리는 한우 소곱창도 2인분을 주문했다. 망경식육식당에는 각 손님상마다 영문 모를 낡은 주전자가 있고 그 안에는 하얗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들어있어서 '이 육수처럼 생신 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하고 생각했는데, 그 의문은 우리가 소곱창을 주문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망경식육식당의 육회비빔밥은 진주 중앙시장에서 먹었던 육회비빔밥과는 다르게 고기와 야채가 다져있지 않고 큼직큼직하게 썰린 고명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고추장과 육회가 따로가 아니라 고추장에 육회가 함께 섞인 모습이었다. 고사리, 애호박, 얼갈이, 콩나물, 고추장과 육회의 적은 재료로 이루어진 단순한 비빔밥이지만 비벼서 먹으면 이 맛이 참 매력적이다. 거기에 함께 나오는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 국물이 고소하고 찐한 고기 맛이 난다. 거기에 약간의 매콤함과 아삭한 콩나물, 부드러운 무조각에 야들야들한 소고기.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먹었다면 '소주!'를 외쳤을 맛이다. 역시 탕국과 매운 소고기 뭇국의 나라, 경상도의 뭇국이다.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비비기보다는 젓가락으로 슬쩍슬쩍 휘저어서 비비면 더 잘 비벼진다. 슥슥 다 비비고서 육회와 야채, 밥은 한입 하면 부드럽고 신선한 고기 맛이 느껴지는 육회에 코끝까지 고소하고 혀끝까지 달착지근한 맛, 거기에 적당히 무쳐져서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채소들. 채소들은 강하게 간이 되거나 익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유의 식감과 맛이 살아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러운 원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육회가 씹히면서 고소하고 달큰하면서 매콤하지는 않지만 찰진 장맛이 느껴지는 요사스러운 매력의 고추장이 혀에서 느껴지고, 그 이후에 치아 사이에서는 식감이 살아있는 채소들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른 비빔밥들을 먹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 망경식육식당의 고추장이 갖고 있는 맛의 매력에 대체 이 고추장에는 무엇을 넣어서 만들었을지 궁금함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놓지 못했다. 달착지근하며 매콤하지는 않으며 부담스럽지 않은 무거움이라, 노하우가 궁금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식당의 노하우는 노하우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망경식육식당에서 소곱창을 주문한다고 하자 주문받으시는 선생님께서는 '우리 집 곱창 좀 질깁니더'라고 하시기에 '괜찮아요, 주세요'라고 하며 주문을 강행했다. 나의 생각으로는 식육식당에서 파는 고기가 맛이 없으면 이상한 것이고, 거기에 한우 곱창을 저렴하게 파는데 왠지 무조건 맛있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아직 조리되지 않은 채 양념장에 버무려진 소의 네 부위의 곱창들이 골고루 양파와 대파 사이에 듬뿍 담겨 한솥이 나왔다. 소곱창이라고 해서 생곱창을 어딘가에 구워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우리가 식당에 입장할 때부터 호기심을 가졌던 식탁 위의 오래되어 보이는 양철주전자에 있던 육수를 전골 철판에 후루룩 부으시더니 끓이시다가 양념된 소곱창을 던져 넣으시고 강불로 올리신다. 바글바글 자작하게 끓어오르는, 전골이 되어가고 있는 곱창들 사이에서 달큰한 맛과 고소한 소곱창의 향이 피어오른다. 밑에서 끓어오르는 고소하고 진한 육수도 한몫을 거든다.
끓어오르는 양념장과 양파, 대파 그리고 소곱창들이 보이는가. 이 사진을 보고서 '와, 맛있겠다'라고 생각했다면 정말로 그러하다, 이 소곱창전골은 매우 맛있다. 깐양, 벌집양, 막창, 콩팥, 소장, 대장 등의 소 내장 부속부위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데 식감은 쫄깃하고 야들야들하며 입안에 넣고 씹으면 고소한 육즙이 끓어오른 국물과 함께 입안에 퍼져 나오면서 식도로 넘기는 것이 싫을 정도로 계속 씹고 싶은 맛과 식감이다. 고기에서 우러나오는 달콤함은 고기의 달콤함과 양파, 대파, 그리고 육수에서 우러나오는 달콤함이 어우러진 육수와 채수가 조화된 맛. 쫄깃한 식감의 내장들은 각 부위마다 각자의 또 다른 식감과 맛을 자랑하는 게, 달달한 양파와 대파를 육수에 함께 싸서 떠먹는 맛은 여기가 식육식당인지 아니면 곱창전골 전문식당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맛이다. 쫄깃함과 달콤함, 육수, 채수, 약간의 매콤함과 고소함, 거기에 아삭한 식감까지 더해지면서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적어도 곱창만은 다 골라 먹었다, 맛있으니까.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으니, 이 식당의 동네의 정육점 역할도 하고 있어서인지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어르신께서 들어와 자연스럽게 주방 근처 식탁에 앉으신다.
"사장님요, 고기 제일 싼 걸로 하나 주소"
"와예? 손자 반찬할라꼬?"
"응응, 장조림이나 끼리 줄란다"
카운터에 앉아 계시던 나이 지긋해 보이시는 사장님께서 냉장실에서 소고기를 꺼내와 조금 잘라서 담으신다.
"여 와서 딸기 좀 드셔보이소"
"안 물란다, 밥 무따"
그렇게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또 다른 동네 단골분이 근처 빵집에서 빵을 사 와서 주방 앞에서는 식당의 사장님, 종업원분들, 단골손님들이 어우러진 작은 다과회가 만들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식당이다, 맛있고 사랑받는 동네 식당. 사람들의 음식뿐만 아니라 정감이 오가는 식당. 삶이 오가는 식당, 달콤한 추억들.
나중에 또 진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도 망경식육식당의 소곱창을 꼭 먹기로 이쁜 여자와 약속하고서 우리는 행복하게 식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