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21장에서 언급했던 '동네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했던 에세이는 단순한 '타지 적응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선택권은 있지도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타지에서 살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 속에 숨어있었다. 어떻게 주도성을 회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과 화해하는지, 그 과정에서 '동네 탐방'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신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기 공감을 함으로써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은 바로 글을 쓰면서 '내가 왜 이 글을 쓰는가?', '이 글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어떤 반응을 끌어낼 것인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나의 감정, 나의 상태,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경치가 아름다웠다거나 역사가 깊이 새겨진 곳이어서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을 관광하는 것은 그 드라마 혹은 영화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 주인공의 에너지와 그것을 감상하고 공유했던 추억을 다시금 느끼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가 '이 동네 가볼 만한 곳 소개'로 끝나는 가이드북 같은 에세이가 되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써 내려갔으면 했던 사연은 최소한으로만 서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출간된다면 독자들의 입장에서 '뭔가 사연이 있는데 에둘러 표현한다.'로 느낄 것 같았다.
어떤 일을 명확히 짚고 나아가기 위해 꼭 실명 같은 것을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자세히 서술하기보다 그 일로 인해 생긴 상처가 어떤 모습이었고, 그 상처는 아물기 위해 무엇에 반응했으며, 무엇을 원하게 되었고, 어떤 도움으로 회복하는지, 등등에 대한 것을 좀 더 이야기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글을 쓰는 사람은 저자로서 자신에게 '나의 감정, 나의 상태,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써야 하고, 자신이 써 내려가는 글 속의 등장인물에게도 같은 것을 물어보고 공감하면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백설공주와 피터팬, 금발머리 소녀는 남의 집에 함부로 침입했지만, 자기 공감이 불러온 태도에 따라 각자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백설공주는 말끔히 청소와 요리, 빨래를 해놓고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며 난쟁이들로 하여금 먼저 '우리와 함께 살아요, 공주님'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녀의 욕망은 생존과 소속감이었고, 그런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했으며, 일곱 난쟁이들에게 그 윤곽을 드러낸 덕분이다.
피터팬은 절반의 해피엔딩만 맞이한다. 피터팬은 동정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웬디와 그녀의 동생들을 네버랜드로 데려가지만, 나중에는 웬디를 집으로 돌려보내준다. 잠시 웬디를 곁에 두기는 했지만, 네버랜드에 있을 자신과 꼬마들을 돌봐줄 또래를 결국 얻지는 못한 것이다. 피터팬은 자신의 진짜 욕망인 외로움과 성장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한채 네버랜드로 돌아간다. 그는 여전히 외롭고, 어른이 싫고, 어른이 되고싶지도 않는 상태다.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자기 공감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조화를 이룰 때, 삶의 주도성을 되찾고 관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피터팬은 웬디의 욕망은 이해했지만 자기 공감의 부족으로 인해 완전한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말할 것도 없이, 금발머리 소녀는 자기 공감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모두 부족했기에 결국 관계와 주도성을 모두 잃고 고립되는 결과를 맞았다.
자신의 글을 쓰면서도 자기 공감을 통해 진짜 문제를 보고, 더 깊은 소통을 추구할 때 글은 더 주도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만 나를 맞추거나,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 한다면 글쓰기의 결과물은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백설공주처럼 자기 공감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균형 있게 유지하고 글을 쓴다면, 글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며 성장할 수 있고, 그것이 독자들에게도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퇴고의 즐거움은 이렇게 자기 공감을 통해 존재의 윤곽을 확인하고 주도성을 찾는다는데 있다. 아쉽게도 좁은 의미의 퇴고는 한참 벗어난 지 오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퇴고의 이야기에서 쏘아 올린 공, 더욱 하늘 높이 쏘아보자. 이제는 정말, '어떻게 쓰면 좋을까?'를 이야기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