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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정화 : 응어리를 풀어내는 글쓰기

by 이지영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기가 막혔던 순간부터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던 순간까지

내 삶에 한두 번쯤 찾아왔을 장면들.


혹은 떠나보내야만 했던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

가슴에 못 하나 박히지 않은 이가 있을까.


당신에게도 떠오르는 말이 있는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에야 그 말문을 잠시 열어 볼 수 있다면,

당신이 읊조릴 첫 번째 단어는 무엇인가?




어떤 말이든 좋다. 중요한 건 내가 말하지 못한 단어들은 머릿속을 맴돌다 내 마음에 고이고 결국 크고 작은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 무엇이든 꺼내보라.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이 만든 안전지대에 어떻게든 그 고요한 폭풍을 새겨 넣는 것이다. 이 시간만큼은 당신의 내밀한 이야기가 상상 그 이상의 것이어도 좋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마라. 억울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고 싶다고 써도 좋다. 어차피 현실이 되지 않고 글 속에 머무를 것이니까. 어떤 자유로운 행위와 생각이든 글이라는 안전지대에 풀어놓을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의외로 생각이 많아지는 시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위해 앞장에서 제시한 '글쓰기 스트레칭'을 꼭 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기쁜 일도, 아무리 슬프고 분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기억하게 된다. 언제까지고 감정적인 상태로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마음이 들끓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를 지배했던 감정은 안타까움과 죄책감이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 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내가 불효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례식에서 나를 뒤덮은 감정은 원망이었다. 암투병 중인 것을 알면서도 술을 권했던 아버지의 지인들과 집안 문제로 괴롭혔던 형제들, 악담인지 저주인지 치료는 못한다고 봐야 한다는 둥, 얼마 못 갈 거라는 둥, 생뚱맞게 간건강 영양제를 내 손에 들려준 친척. 아버지께 예의상으로라도 응원을 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모든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화가 나 있었다.


세 번째 감정은 홀로 남겨진 엄마의 슬픔과 죄책감이 너무 커 내가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초조함이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모든 생각과 행동이 엄마를 외롭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떻게 엄마를 우울에서 지킬 것인가?'




그렇게 시간이 제법 흐른 어느 날, 나는 우습게도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 내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썼다. 눈물을 흘리며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 최대한 자세하고도 알맞은 단어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쓰는 동안 의외의 사실이 벌어졌다. 첫 번째는, 타인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적당선의 마무리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꼬리를 물고 쫓아가기엔 시간과 에너지 소비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 그때 내게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범벅으로 장례식장을 지키며 느꼈던 것은, 조문을 오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형식상 예의를 지키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퇴근길에 집에 들렀다가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조문을 온 것이 아닌가. 머무르는 시간 동안 다른 조문객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 나르는 일을 거들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는 모든 분들이 눈물겹게 감사했던 것이다.


식구 수에 비해 상주의 방은 좁아서, 엄마와 우리 아이들도 다 들어가 잘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빈자리를 찾아 좌식 테이블 사이에서 이불도 없이 새우잠을 자야만 했는데, 그 와중에 새벽 조문객이 드문 드문 이어졌다. 아버지. 어찌 이리 생전에 많은 정을 베푸셨나요. 감사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쪽잠을 자가며 새벽 조문객을 받아주는 남편과 제부, 사촌 오빠에게도 너무나 고마웠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이 몰아쳤던 것을 당시에는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다. 글쓰기를 하며 이런 감정을 새삼 느끼게 되자 생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도 들었던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다. 끝까지 지키지 못한 건강은 안타깝지만 아버지의 몫이었다. 좀 더 의학기술이 발전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더 간호를 정성껏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고 억지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건강하지 못했을 뿐 그리 억울하게 사신 분도 아니었다.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힘들게 했어도 아버지는 강직하게 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언제나 유머와 모험심이 넘치셨다. 더 좋은 곳 못 가보고 더 맛있는 것 못 먹었어도 아버지께는 좋은 인연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아버지가 걸어온 발자취가 눈에 보였다. 슬픔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기도 했다. 새로운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아버지의 삶에서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글쓰기'는 앞서 이야기 한 '글쓰기 스트레칭'이 잘 이루어진다면 언제든 시도해 볼 수 있다. '응어리를 풀어내는 글쓰기'의 효과는 어떤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응어리를 풀어나가는 나에게 공감함으로써, 마음이 치유되며,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것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은 응어리를 흘려보내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새로운 시각을 갖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정화'라고 부른다. 어떤 감정에 매몰되어 있던 나를 다른 다양한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선택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눈치 보지 말고 폭풍을 새겨 넣으라고 해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썼는데, 쓰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힘이 센 감정에 뒤덮여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온갖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 나도 복수하겠다고 썼지만 글로 쓰고 나니 그 정도까지 칼부림(?)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괜히 민망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다시 받아들여야 할까?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새로운 감정이 솟아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록해 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사색에 깊이를 더하면서도 내 이야기에 질적으로 남다른 개연성을 부여할 것이다. 감정에 이름도 붙여보자. 과거의 응어리를 풀어내며 세심히 단어를 골랐던 것처럼, 정화된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지 스스로 물어보라. 그것도 모조리 글로 써보자. 과거의 감정을 재해석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응어리를 풀어내고 정화하는 글쓰기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언제든 다시 써볼 수 있다.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 그 맛이 다르듯이, 같은 상황도 그때 느끼는 것과 나중에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 사람은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새로운 시각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마친 뒤 다시 글을 읽어보라. 다음날도 좋고, 한 달 후, 몇 년 후가 되어도 좋다. '이걸 내가 썼다고?'라는 생각이 들면 당신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 것이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라며 헛웃음이 나온다면 나는 그 사이 치유와 성장을 거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좋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써보자. 이미 말했듯이, 이때 맞춤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마나 물 흐르듯 썼는지, 어떤 생각으로 흘러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고쳐 쓰면서 스스로 변화를 느낀다면 당신은 진정한 퇴고의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생각이 더 이상 변하지 않고 이제는 확고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정화'를 모두 마친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또다시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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