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하는 김장이란.
드디어 내 김장 횟수는 한 손만큼 채웠다. 아직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만큼이지만, 지천명이 되는 초겨울날 열 손가락을 채울 예정이다. 만으로 불혹이 되었을 때가 첫 번째였구나.
애들이 버무린 김치나 내가 버무린 김치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엄마 어떻게 하면 돼?’라고 물었을 때, 해외에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끼리 하는 언어처럼 난 설명해줬다. 내 몸통에 팔을 딱 붙이고 천장을 보면서 잘린 배추 반쪽을 표현했다.
“배추 잘린 면이 위를 보게 두면 된대. 양념을 품어야 하니까.”
김장 이력이 길지 않은 데다가 내가 살림에 대해 할 말이 그리 없어서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말보다 ‘된대’라는 종결어미를 붙여서 말했다. 다들 자신의 배추에 색을 입히는 것에 열중했다. 특히 둘째는 그림을 조금 그리는 애라서 그런지, ‘심미안’이 들어간 양념 칠하기를 했다. 본 것은 있어서 초록색 배춧잎으로 벨트까지 채우려 했으나 배추는 속까지 꽉 차게 자라서 겉잎으로 속을 감싸기엔 역부족이었다. 흡사 현재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서 이제 조언은 주는 입장만 된 게 아니라 내가 들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좋다는 뜻이다.
김장이 절반쯤 진행될 때, 신랑의 부재를 느꼈다. 일이 힘들다는 뜻이 아니다. 레시피만 철석같이 믿고는 고춧가루를 들이부었다. 작년보다 고춧가루 값이 떨어져서 망정이지, 나는 작년 이맘때 양념에 대한 불만을 이름 모를 블로거에게 투덜댔는데 올 해도 마찬가지다. 1킬로그램은 뺐어도 될 뻔했다. 신랑이 있다면, 분명 그 점에 대해 말해줬을 것이다. 같은 거리에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그는 조금 뒤에서 바라보는 듯, 내 덜렁대는 것을 바로잡아줬다. 이래서 신랑은 자신의 근무일에 김장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거다.
그래도 여자 넷이서 그럭저럭 해냈다. 스피커로 노래도 틀어놓고 애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정말 빨리 끝났다. 밤 9시에 퇴근해서 오전에 준비해둔 채소와 육수, 그리고 젓갈과 갈아둔 마늘(생강과 사과도 넣어서) 등등을 넣어서 양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버무리는데 고작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애들에게 훈수를 둘 일은 없었다. 내 실력이 변변치 않은데 어디서 훈수. 막내가 말했다.
“엄마, 왜 김장을 품앗이로 하는지 알 거 같아.”
나도 알 거 같다. 돌아가며 일을 한다는 건 결국 나 혼자 내 일 하는 거만큼 한다는 건데, 내 것만 하고 말지 싶지만, 함께할 때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난 이제야 알았고, 딸들도 이제 알았으니 제법 빨리 알게 됐다.
열 손가락만큼 김장하고 있을 땐, 딸들은 더 능숙할 것만 같다. 나의 원년 김장 멤버들, 어제도 제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