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늘 불안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뱃속 아이가,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될까 봐 늘 불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그 무력함에 괜히 먼저 고꾸라졌다.
나도 처음이고 나도 여전히 자라는 중인데 내 몫으로 주어진 저 반짝이는 삶들이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불안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음,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으며 처음 깨달았다. 그 뒤로 때마다 오는 일들도 그랬다. 어떤 준비나 계획대로 되는 일은 적었다. 늘 예상을 빗나갔고 어떤 가정이든 판단이든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도미노처럼 쏟아져 나온 게 작년이다. 역시 내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극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동시에 나를 넘어서서 커가는 아이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늘 불안한 상상을 했다. 상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렇게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냥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정도와 시기가 다를 뿐 늘 그런 것 같다.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이맘때 걷지 않으면, 이맘때 말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우리는 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다음도 마찬가지다. 그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아도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관심과 사랑과 믿음만 있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떨 때는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곡선의 시간을 살기로 했다. 직선이 아닌 곡선.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나 효율성보다 여러 곳을 들를 수 있는 곡선. 그 굽이 길마다 마음이 자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그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불안은 우리를 좀먹는다. 또 불안은 육아과정을 좀먹는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불안을 마주할까.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겠지. 운전면허증이 나온 다음날 운전대를 잡은 나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 아빠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내가 스물여섯에 결혼을 할 때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불안을 내색하지 않았고 들키지 않았다. 그사이 나는 아무 일도 없는 모양새로 살아가는 삼십 대가 되었다.
우리의 마음이 불안인지 아닌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더더욱 문제일 것이다. 만약 불안하다면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문을 걸기로 한다.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굽이 굽이 돌아 결국 괜찮아질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