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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Nov 21. 2022

부모의 시 읽기 : 마음 달래기

문정희의 <찔레>







도무지 다잡아 지지 않는 마음.


작년 어느 날 문정희 시인의 시 "찔레"를 읽다가 내가 문정희를 이해하는 때가 오다니, 하고 혼자 피식 웃었다.


편독 않던 고등학교 시절, 모든 시인의 시집을 공부하듯 다 읽던 그 시절에도 문정희의 시는 참 재미가 없었다. 열일곱 감성으로 문정희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박사논문을 쓸 때 즈음, 조금 이해되는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이 시를 읽는데 이토록 와닿을 일인가 하며 당혹스러웠다.


그때 나는 시 속의 그대를 누구로 상상했던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겠지. 그러다 어제 울적한 마음으로 헤매다 다시 이 시를 보았는데 읽는 내내 그대는 아들이 되어 시 속에서 뛰어다녔다. 그대 자리에 아들을 넣으니 지금 내 마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로부터 위로를 받았나. 다짐을 했나. 혹은 더 슬퍼졌나. 글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이 아린 마음을 이 시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거면 됐겠지. 어차피 이 생은 없는 답을 찾아 헤매고 미로 같은 길을 더듬다 말고 끝날 테니까. 버텨왔던 마음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얼마나 더 자주 느껴야 할까.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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