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시절은...

by 혼자놀기

지난 주말에는 날씨도 춥고, 바람 불고, 눈도 내렸다. 오늘은 한 달에 한번 체육관이 쉬는 날이라 양재천을 걷기로 하고 집을 나섰는데, 길을 건너려다 아파트 양지바른 곳에 매화가 한가득 핀 것이 보인다. 아 추워도 꽃은 때 되니 다 피네..

하며 지나치려다, 생각해 보니 아파트 삼층 보다 큰 매화는 못 본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했더니, 매화가 아니고 벚꽃이다. 벚꽃이 벌써? 종일 해가 비치는 양지바른 쪽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다른 벚나무는 이제야 봉오리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유난히 빨리 핀 것은 맞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 있는 교회 앞에는 동백, 산수유, 매화가 뒤섞여 피어있다. 여기는 햇빛보다는 축복이 내린 땅인가 보다.

양재천 둑 양 옆에는 온통 노란 개나리다. 진달래는 드문 드문 피어있고, 목련은 모두 다 활짝 폈다. 요즘 위아래가 없는 인간 세상 본 따서 꽃들도 앞 뒤 없이 피고 지는 모양인가? 아니면 매년 그랬는데 올해 내가 괜히 신경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 걷다 저 앞 길 위에 흰 것이 덮여있는 것이 보인다. 다가가 보니 성미 급한 벚꽃이 벌써 지고 있다. 다른 것은 피지도 않았는데 딱 한그루만 꽃이 져서 떨어진다.


타워팰리스 쪽에 있는 동백은 아직도 활짝 피지는 않았다. 나무가 작아서 큰 나무들에 가려 빛을 많이 받지 못해 그런 모양이다.

여기까지 걸어오면 집에서 약 3.5킬로미터쯤 된다. 이제 돌아가면 목표인 만보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들러서 마시는 커피집에서 차 한잔하고 집에 가려다가, 전에 한번 들렀던 조용한 커피집이 생각났다. 창문 옆자리에 앉으면 밖이 보이고 그 앞에 큰 느티나무가 있는 집인데, 옆 골목으로 들어가 낯설어서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느티나무를 보고 찾았다. 문 앞에 가니 월요일은 쉬는 날이다. 그러면 날씨도 좀 풀렸으니 냉면을 먹을 생각을 했는데, 이 집도 월요일은 쉰다. 핸드폰 앱을 켜본다. 벌써 8 천보를 걸었다. 이제 그만 걷고 전철을 타고 집에 가려는데 개찰구 입구에 빵집이 있다. 혹시 내가 좋아하는 스콘이 없나 살펴본다. 없다. 파운드 케이크가 눈에 띈다. 저거는 단데... 그래도 오랜만에 달달한 호두 파운드 케이크가 먹고 싶어 하나 사들고 집에 왔다. 오늘 만 이천보를 걸었다. 그걸 확인하니 다리도 아프고 졸리다.


저녁을 먹고 다시 꽃길을 걸어볼까 하다가 옷 다시 입기 귀찮아서 아이패드를 켜고 영화를 봤다.


매주 월요일이면 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를 평생 함께한 여섯 명의 카톡방에 우리 시대의 흘러간 노래가 하나씩 올라온다. 그러면 거기 댓글을 달면서 지난주 안부를 챙긴다. 오늘은 내가 늙어가는 일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더니,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오래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각자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다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 오늘 다시 본 영화가 바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인데, 옛날에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이것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지막 부분에 늙은 기사가 더 늙은 미스 데이지에게 빵을 한 조각씩 먹여주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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