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주변에는 MZ밖에 없죠?

by 커뮤니케이터

조금 올드한 단어, 아니 정정해서

올드한 단어일 수 있지만 웹서핑하다 보면

각양 각색의 사연들을 만나게 된다.


알바생한테 뒤통수 맞은 사장님의 하소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직원의 이야기,

고부갈등을 겪고 있는 며느리의 이야기까지.


온갖 사연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쪽의 입장이 되어 편을 들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다양한 견해가

있음을 느끼곤 한다.

가끔은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내가 겪는 일인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너무 극한 상황에 '이게 진짜 사실일 수가 있나?

자작극 아니야?'라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나도 직장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많은 사연 중 가장 공감되는 내용은

직장에서의 갈등 상황이다.


숱한 상사들과 후배들을 만나며

여러 안타까운 상황들을 만났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일하며

성향이 맞지 않았던 꼰대 상사 때문에

매일 퇴사를 생각하고 힘들어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모셨던 상사는 박사과정까지 한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분이었다.

그만큼 회사의 기대치도 높았고, 같은 팀원들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화법이 굉장히 독특한 편이라,

꽤 불편한 나날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누군가 그 분에게 "와~ 머리하셨네요!

너무 예쁘신데요?"라고 하면, 통상 돌아올 답변은

"고마워요! 잘 어울려요?" 정도지 않을까?

근데 그분은 그런 칭찬을 들어도

"그럼, 그전에는 안 예뻤다는 거?"라며 반문했다.

칭찬을 해준 사람에게 무안을 주는 걸 넘어서

말문이 턱 막히게 하는 화법이었다.


문제는 그런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만,

연차도 나이도 있는 그 분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점차 사람들은 상사와 대화하는 걸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팀에서 다른 팀에게

요청해야 할 사항이 생겼다.

회의를 거쳐 요청할 사항들을 토의한 끝에,

점심시간까지 20분쯤 남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 회의 내용을 정리를 시작한 찰나,

상사가 다가와 “점심 전까지 할 수 있지?”라고 했다.

내용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해당 내용에 맞춰 원하는 포즈나 분위기가 담긴

마음에 쏙 드는 참조 사진을 찾는 일은

결코 20분 내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같이 회의한 상사가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야속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느끼며 정신없이 일했고,

이내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게 되었다.


선임 역시 상사를 불편해 하던 터라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솔직히 일도 안 끝났고, 언짢은 기분으로

같이 식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까지 안 가겠다고 하면

상사 혼자 식사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을 애써 누르며 식사하러 갔다.



사내 식당에서 서둘러 밥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가 나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강사님! 나한테 뭐 기분 나쁜 거 있어?"

먹던 밥도 목구멍에 차버리고, 기도 차버렸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 내가

표정 관리를 잘 못 한 탓이었다.

하지만 다른 부서 직원들도 바로 옆에서

밥 먹고 있는 사내 식당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 건 어른으로서 상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요, 할 일이 남아서 밥 빨리 먹은 건데요……."

라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자 자기가 나보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으니

얘기해주는 거라며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훈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은

결국 죄송하다는 나의 사과로 일단락되었다.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로비에서 동기를 만난 상사가 자긴 차를

한 잔 마시고 갈 테니, 먼저 가라며 나를 보냈다.

혼자 돌아온 나는 1시간 30분의 점심시간 중,

남은 한 시간가량을 끝마치지 못한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실컷 수다를 떨고

돌아온 상사는 "아직도 안 끝났어?

내가 더 시간 미룰 수 있는지 물어봐 줄까?"라며

나를 위하는 척 생색을 냈다.


점심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일에 매달린 나에게

실컷 쉬다 온 사람이 건넨 그 말은

결코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점심 전에 해 줄 것이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필요했기에

부탁드린다고 했다.


업무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상사는

해당 팀에 전화를 걸어 "혹시 저희 파일

보내드리는 거 좀 더 시간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강사님이

너무 꼼꼼하게 하느라 오래 걸려서."라고 이야기했다.


회의 내용을 그렇게 정리해서 보내기로 한 건

회의시간에 결졍된 일이었다.

당시 막내였던 나에게 결정권이 없었음에도,

다른 팀에 마치 내 잘못인양

나를 까면서 요청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반납해 가며 일한 부하직원을

위해 주지는 못할망정, 앞에서 비난하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해당 팀 역시 상사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상사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나는 점심시간까지 반납해가며 하던 일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니

상사의 입장에서는 표정 관리도 못 하고,

자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가

누구보다 '요즘 MZ'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저 어린 게 감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행동과 표정 때문에 상사가 더 꼰대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상사와 부딪히며

'상사가 싫고 불편하다.' 라는 감정을 느낀 이후

상사의 말투, 행동, 표정까지 다 싫었던 것처럼,

상사 역시 나를 그렇게 바라봤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 불편한 관계의 끝은

상사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마무리되었다.




상사가 퇴사하고 시간이 꽤 지난 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적인 소통에서 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빚곤 했던 그 상사가,
‘커뮤니케이션’ 관련 책을 냈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나로서는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어쩌면 나와의 관계에서도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그분 안에도 있었던 건 아닐까?


당시엔 미처 보지 헤아리지 못했던 감정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마음.

나 역시 그 모든 것이 참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누군가의 꼰대 같던 행동도,

누군가의 MZ다운 반응도,

결국은 ‘서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는지도 모르겠다.




서비스 업계에서는 직원을 '내부고객'이라 부른다.

언제든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외부 고객만큼이나 중요한 ‘고객’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쉽게 그 사실을 망각하고 만다.

외부 고객에게는 온 힘을 다해

친절을 다 하려 노력하면서,

정작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부 고객에게 소홀히 대하고 만다.


하지만 서비스의 품질은

결국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불편한 감정을 품은 내부 고객으로부터

좋은 서비스가 나올 수는 없다.


외부 고객을 대하는 태도 이전에 내 옆의 고객들과

어떤 관계를 쌓아가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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