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02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과학의 언어에서 시작된 ‘지구온난화’
기후를 다루는 언어는 처음에는 과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중립적 용어에서 출발했다. 1950∼1980년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학계와 언론은 이를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로 명명했다. 이 용어는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물리적 현상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주로 관측 가능하고 수치화된 온도 변화를 중심으로 문제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온난화’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어느 정도 온화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연상케 하며, 위기의식이나 절박함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단계로 언어는 확장되기 시작한다.
정책적 중립성과 포괄성의 언어, ‘기후변화’
1990년대부터는 ‘지구온난화’보다 더 넓은 개념인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주된 용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단지 온도의 상승뿐 아니라 강수 패턴, 해수면 상승, 태풍의 강도와 빈도, 생태계의 변화 등 기후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기후변화’라는 표현은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절했지만, 중립적인 표현이었기에 위기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국제기구나 정부는 이 용어를 통해 정책적 예측과 대응을 논의했지만, ‘변화’라는 단어는 때로 너무 느슨하고 유예적인 느낌을 주었고, 행동을 촉구하기엔 부족했다.
윤리적 각성과 함께 등장한 ‘기후위기’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용어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는 단지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설명을 넘어서, 그 변화가 생존을 위협하는 비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인식의 전환을 담고 있다. 이 용어는 과학의 언어에서 윤리와 정치의 언어로 넘어간 첫 번째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단지 문제를 관찰하거나 논의하는 데서 벗어나,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위기라는 단어는 책임을 묻고, 응답을 요청한다.
임계점을 넘어서며 등장한 ‘기후붕괴’
2020년대 들어 기후 현상은 더욱 급격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 ‘기후재난(Climate Disaster)’과 같은 언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기후 시스템이 안정적 구조를 상실하고 있으며, 일부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자각을 반영한 표현이다.
북극 해빙의 급속한 소실, 남극 빙하의 불안정, 해양의 열축적, 산불의 대형화, 폭염의 일상화는 단지 ‘위기’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용어는 단지 강한 표현을 위한 과장이 아니라, 비가역적 전환점(tipping point)에 다다랐다는 과학적 경고를 사회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기후재난의 구체화와 ‘기후정의’의 대두
같은 시기, 기후 관련 언어는 점점 더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연결된 표현들로 확대되고 있다. ‘기후열파(Climate Heatwave)’, ‘기후 이재민(Climate Displaced)’, ‘기후빈곤(Climate Poverty)’ 등의 용어는 단지 기후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누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용어의 등장은 기후문제가 ‘불평등’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기후위기로 인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장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은 단지 온실가스를 줄이는 기술적 해법이 아니라, 사회 정의, 윤리, 그리고 연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
기후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행동을 요청하는 나침반
기후를 부르는 말은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태도를 반영한다. 언어는 현실을 해석하는 틀이며, 그 틀은 우리의 행동 가능성과 방향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지구온난화’라고 부를 때 우리는 과학적 관찰자였지만, ‘기후위기’, ‘기후붕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책임의 주체이자 실천의 주체가 된다.
기후의 언어를 바꾸는 일은 곧 기후에 응답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말을 선택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는가와 연결된다. 언어는 단지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시작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