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으면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고, 쓰던 문장을 지우고 또 지웠다.
억지로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 끈질기게 버텼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문장은 더 멀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쓰기 위해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었고,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도착한 곳은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일본 북쪽의 작은 온천 마을. 눈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찼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오랜만에 어떤 문장을 떠올렸다.
‘
걷는다는 건, 마음의 서랍을 하나씩 여는 일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생각하려고 애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순간, 그 말이 내 안에서 또렷하게 올라왔다.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내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떠오른 말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 글감은 책상 위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가끔은 낯선 공기, 전혀 새로운 길,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더 잘 자란다는 걸.
그 후로 몸으로 부딪히는 일을 조금씩 늘려보기로 했다. 요가 수업에 등록하고,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 몸을 맡겨봤다. 춤 수업을 들어보고, 어색한 동작으로 땀을 흘렸다. 처음엔 부끄럽고 서툴렀지만, 어느 순간 그런 감정조차 나에겐 새로운 감각이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조금씩 내 안의 문장을 흔들었다.
꼭 글로 쓰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했는지를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다는 게 좋았다.
창작은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보다,
잘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결국 나를 쓰게 한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무리해서 쓰지 않는다.
답답하면 걷는다.
길을 나서고,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다른 문장이 조용히 찾아올 것이다.
그 문장은 아마
내가 진심으로 살아낸 어느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