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낌의 진화』-감정, 의식, 그리고 인간됨에 대하여

안토니오 다마지오

by 콩코드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낌의 진화』는 인간이 어떻게 감정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그 감정이 어떻게 의식이라는 복합적 시스템으로 진화했는지를 신경과학과 철학, 심리학의 통섭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데카르트의 오류』 이후 다마지오는 꾸준히 인간의 감정과 의식, 신체와 뇌의 관계에 천착해왔으며, 이 책은 그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인간은 어떻게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 느낀다는 사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감정, 생존의 오래된 언어


다마지오는 이야기의 출발점을 ‘감정’에 둔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일상적이고 사소한 차원의 문제로, 때로는 이성적 사고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다마지오의 주장은 다르다. 감정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갖춰온 기본적 시스템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회피하며, 쾌락과 혐오를 구별하는 능력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감각에서 출발한다.


감정은 단순히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몸이 환경에 반응하며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이며, 생존의 본능과 직결된다. 기쁨, 분노, 슬픔, 불안—이 모든 감정은 삶을 지속하기 위한 신체의 정교한 경고이자 방향표다. 다마지오는 이를 ‘홈오스타시스(항상성)’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고, 감정은 그러한 내부 균형을 조율하는 수단이다.


감각에서 의식으로, 느낌의 진화


그러나 『느낌의 진화』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감정이 몸의 신호라면, '느낌(feeling)'은 그 신호에 대한 마음의 응답이다. 우리는 배가 고프다고 느낄 때, 단순히 위장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고픔이라는 감각을 해석하고, 나 자신을 그 감각 속에서 인식한다. 바로 이 ‘느낌’의 작동이 의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다마지오의 핵심 주장이다.


감각 → 감정 → 느낌 → 자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존재하는 존재’로 자각하게 된다. 뇌는 몸의 신호를 수집하고, 그 신호를 바탕으로 ‘나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느낌의 누적이 곧 의식이라는 복합적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결국 자아란, 몸을 감지하는 마음의 작동 위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나는 느낀다’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고전적 명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의 주장은 명확하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신체 없이 의식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뇌는 신체의 감각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그 감각이 없다면 의식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이처럼 감정과 느낌은 인간 존재의 근본이며, 모든 사유의 바탕이다. 감각과 감정 없이 사고는 가능하지 않다.


다마지오가 강조하는 바는, 신체를 떠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과 뇌, 그리고 신체는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이다. 우리의 자아는 신체라는 구체적인 토대 위에서만 싹틀 수 있다. 생각보다 먼저, 우리는 느끼고, 그 느낌 속에서 세계와 나를 인식하게 된다. 의식은 머리가 아닌 몸에서 비롯된, 오래된 진화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 감정하는 존재


『느낌의 진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성 중심’의 인간관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다. 이성적 사고는 인간을 설명하는 하나의 층위일 뿐, 그 이전에 우리는 ‘느끼는 존재’라는 것이다. 감정은 인간을 유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윤리적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토대다.


다마지오의 이론은 신경과학적 발견을 토대로 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다. 오히려 그는 생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며, 감정이 만들어낸 의식이라는 찬란한 진화를 따뜻하게 설명한다. 인간이란 결국 느끼고, 아파하며, 기뻐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책이 전하는 질문


『느낌의 진화』는 결국 이렇게 묻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신체를 갖고, 그 신체의 변화를 감각하며, 감정과 느낌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다. 감정은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본질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가장 근원적인 언어다.


이 책은 과학적 탐구를 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왜 느끼고, 그 느낌은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가. 그리고 그 느낌들이 모여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데카르트의 오류』(안토니오 다마지오)

감정과 이성이 분리되지 않고, 신체와 뇌, 감정이 통합되어 사고를 이끈다는 혁신적 주장을 담은 책. 인간이 왜 감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지를 신경과학과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느낌의 진화』와 함께 읽으면, 감정과 의식, 신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생명의 진화를 유전자 중심으로 바라본 고전. 이타적 행동조차 유전자의 생존 전략이라는 시각에서 설명하며, 인간과 동물의 본능을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

물리학자의 눈으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한 책. 생명이 질서 유지를 위해 어떻게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설명하며 현대 생물학과 분자생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질 볼트 테일러)

뇌졸중을 겪은 신경해부학자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뇌의 좌우 기능과 의식, 감정의 본질을 탐구한다. 뇌와 자아, 회복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공감의 시대』(제러미 리프킨)

공감 능력이 인류 문명과 사회의 방향을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조망하는 책. 감정과 공감이 어떻게 미래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