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방식
누군가 세상을 바꾼다고 했을 때, 우리는 보통 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떠올린다. 혁명을 외치는 사람들, 권력과 제도를 흔드는 운동가들, 혹은 과학이나 예술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 하지만 장 지오노의 짧은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런 이미지의 정반대에 서 있는 한 인물을 소개한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한 사람이다. 바로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나무 심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젊은 여행자가 황폐한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을 지나던 중 한 노인을 만난다. 그는 매일 산에 올라가 도토리 세 개 중 하나를 골라 나무를 심는다. 물이 귀하고 인적이 드문 그 척박한 땅에서 그는 말없이, 계산 없이,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채 자연을 회복시키는 일을 계속한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그 땅은 놀랍게도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다. 나무가 자라자 동물과 사람이 돌아오고, 물이 흐르고, 마을이 다시 생긴다. 하지만 그 기적의 중심에는 어떤 칭송도 명예도 바라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간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소설이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낸 이의 ‘방식’ 때문이다. 그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어떤 사회적 담론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오직 하루하루,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을 지속했을 뿐이다. 지오노는 이를 통해 말한다. 진짜 변화는 말보다 행위에서, 단절보다 지속에서, 외침보다 침묵에서 비롯된다고.
엘제아르 부피에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한 마디로 '신념'이다. 그 신념은 목소리 높여 외쳐지는 이념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을 통해 증명되는 성실한 의지다. 그것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꺾이지 않고, 누구도 함께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며, 단 한 사람의 손으로도 세상을 다시 푸르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신념’은 어떤 종교적 교리나 사상적 충성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조용한 결심이다.
이야기는 자연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지오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파괴하고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돌보고 기다리는 인간. 자연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않는다. 오늘 심은 씨앗이 내일 싹을 틔우지 않는다. 부피에가 했던 일은 바로 그 지연된 시간의 순리를 믿는 행위다. ‘나무를 심는다’는 말은, 단순히 숲을 만든다는 뜻을 넘어, 미래를 위한 신중한 헌신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은 ‘영웅’의 개념에 대한 반문을 던진다. 우리는 종종 눈에 띄는 성과나 업적을 기준으로 위대한 사람을 판단한다. 하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은 묻는다. 세상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어쩌면,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가장 오래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든 사람이 아닐까. 작고 꾸준한 실천이 결국은 거대한 시간을 움직이고, 시대를 감동시킨다. 세상은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잔잔히 켜지는 등불에 의해 바뀌는 법이다.
독자는 책을 덮으며 생각하게 된다. 나는 오늘 무엇을 심었는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위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혹은 결과 없는 수고를 무의미하다고 여긴 채, 조급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지오노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정하면서도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언젠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는가?”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말 없는 실천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느새 ‘빠른 성과’와 ‘즉각적인 반응’에 중독되어 있다. 누군가의 조용한 노력이나 보이지 않는 땀방울은 쉽게 잊힌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흐름을 거스른다. 단 한 사람이, 묵묵히,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을 바꾸는 장면을 보여주며 말한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어쩌면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나무를 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가 보고 있지 않아도, 자신만의 신념을 따라 계속 나아가는 사람.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런 이들에게 바치는 조용한 찬가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우리가 심은 씨앗이 숲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어줄 것임을 잊지 말라고, 말없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