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 무심코 던져진 한 마디가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며칠이고 떠오르지 못한 채 무게를 더해 간다. 그렇게 오래도록 곱씹은 말은 어느새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마저 바꾸어 놓는다.
그 말을 던진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 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계속 되뇐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내가 모자란 걸까?
살면서 가장 버거운 순간은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때다. 나의 말투, 표정, 선택 하나하나가 과연 괜찮은 것이었는지를 끝없이 검토하다 보면,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 속에서 연기하는 나’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고 중심이 무너지면, 그 어떤 말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치 보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 속마음을 감추거나 다르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자꾸만 나를 조정하는 사이, 나는 조금씩 나와 멀어지고 있었다. 내 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해졌다.
그런 나를 되돌린 건 아주 작고 단순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누구의 기대에도 맞추지 않은 채 온전히 내 뜻대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화를 내지도 않았고, 관계가 단절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하루가 끝나고 난 뒤, 처음으로 깊고 자유롭게 숨을 쉬는 법을 배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확신이 생겼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
우리는 종종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다른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웃는다. 하지만 그 가면은 오래 쓰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더 이상 나를 숨기고, 감정을 조절하며, 타인의 틀에 나를 맞추는 일이 당연해지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이제 나는 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삶은 거창한 결심이나 화려한 선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선택 하나하나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늘의 나를 솔직하게 살아가는 것. 그 단순한 실천이 쌓일 때, 나는 비로소 나를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더라도, 억울하게 보더라도, 내 진심을 몰라주더라도, 그것을 모두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설명보다 침묵이, 해명보다 믿음이 더 크고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늦게서야 배웠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말에 쉽게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 먼저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다. 상처가 어딘가에 박혀 아프다고 말할 때, 그것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이 왜 생겨났는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조용히 짚어본다. 타인이 던진 시선이 나를 가두려 할 때,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거절한다. ‘나는 나’라는 문장을 되뇌며, 나의 테두리를 다시 그린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준이 있고, 그 기준들은 끊임없이 나를 재단한다. 잘 사는 것, 멋진 것, 당당한 것, 행복한 것. 그 모든 이름 아래에서 나는 종종 작아지고, 부족해 보이고, 초조해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한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온전히 안아줄 수 없다. 그 믿음은 타인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서 수없이 거쳐 온 선택과 경험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모든 관계에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나를 오해한 채로 머무를 것이다. 그것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사람과 친밀해질 수는 없고, 모든 순간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으며, 모든 말이 공감받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가끔은 ‘그냥 괜찮은 척’이 아니라,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되,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내 선택을 지키되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운다.
사람들 사이를 건너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다. ‘너는 너의 중심에서 살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법을, 너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과 경험을 믿고, 나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삶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고, 세상 속에서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