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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무 부장에게 걸려 온 전화

by 콩코드


2월 초순 한낮의 기온이 10도를 넘나들었다. 무 부장 자리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무 부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가 전화기 본체에 부딪히자 둔탁한 소리를 냈다.



- 재정부 무대포입니다.

- (굳이 부장을 찾을 이유가 뭐라지? 쌔고 쌘 게 직원들인데.)



무 부장은 귀찮다는 듯 상대방에게 대꾸했다. 근무 개시 시각이 조금 지난 뒤에 걸려 온 전화는 사적으로 통화할 상대가 아니라면 십중팔구 고객이었다.



- 통성명했다니까(요).



상대방의 말에 뭐가 뒤틀렸는지 무 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 소속과 이름을 밝혔잖아(요).

- 못 들은 건 당신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야.

- 귓구멍 막혔어(요)?



부장이 고객을 상대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건 의외였다. 회사가 전화 응대 매뉴얼을 배포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사장은 고객에게 친절한 응대를 거듭 당부했었다. 와 과장은 사태가 커질 것을 직감했다. 부장의 말을 듣고 화내지 않을 고객이 있다면 그런 고객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었을 터다. 결국은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삭이고 적당한 선에서 주의를 주고 전화를 끊었을 것이다. 실제 고객 대부분은 상대의 기세에 눌려 기적은커녕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 부장은 오늘도 그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소리치면 상대의 기가 꺾일 테고 일장 연설을 해서 직원들에게 자신이 이런 부장임을 과시할 참이었다. 과연 무 부장은 보기보다 주도면밀했다. 고객의 크레임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직원들에게는 위세를 과시하는 용도로 통화를 이용하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죄다 다르듯 그와 반대되는 성격의 고객도 있는 법이다. 상대방 역시 전화 톤을 높이고 있었다. 부장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와 과장이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무 부장의 답변에서 유추하면 상대방이 크게 격양된 모양이었다. 무 부장은 작정하고 선을 넘었다.



- 여기가 어디라고 아침부터 행패야.



무 부장의 전화 응대는 과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정신 나간 사원이라도 일단은 고객의 말을 듣을 줄 알았다. 얼마간은 분도 참았다.



- 화나더라도 우선은 참고 안내해.

-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거 내 다 안다니까.



무 부장 역시 부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십 번은 더 직원들을 훈계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배포한 매뉴얼의 응대 예시는 이렇다.



- 잘 안 들리셨다니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또박또박 제 이름을 말하겠습니다.

- 용무를 말씀하시면 친절히 안내드리겠습니다.



상태를 주시하던 와 과장은 순간 멈칫했다. 백보를 물러나 생각해도 무 부장이 고압적이라는 판단이 바뀌지 않았다. 수십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손해나는 태도를 보인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고객의 말꼬리를 잡고 말씨름하는 꼴이라니. 아무리 ‘가재는 게편’이라도 직원들은 부장이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만했다.



무 부장은 대놓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제 됐다 싶으면 무 부장은 다시 기세를 올렸다. 그제야 와 과장은 이 모든 행동이 직원들 들으라고 부러 하는 것임을 알아챘다. 얼마 전 와 과장과 의견이 충돌하면서 무 부장이 자신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단정한 모양이었다. 시쳇말로 그런 식으로 ‘가오’를 잡으면서 위신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인격이 결락된 권위의식은 위험하다. 어긋난 보상 심리는 독소와 같다.



- 봐, 세게 나가야 한다니까.

- 제까짓 게 뭐라고.



전화를 끊고나서 무 부장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아닌 척 부장의 말을 새기고 있었다.



- 내가 한 두 번 겪어봐.

- 아예 처음부터 싹을 죽여야 한다니까.



무 부장은 실수하고 있었다. 다가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채. 직원들은 고객의 전화에 어떤 식으로 응대할지에 관해 서로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무 부장의 전화 태도는 직원들에게 질높은(!) 가이드 라인이었다. 부장이 저렇게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해야 겠군.



며칠이 지났다. 무 부장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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