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해수욕장에 다녀왔습니다. 홀로 해변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책의 내용보다는 그 아침의 고요한 풍경이 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다리가 짧고 통통한 반려견을 끌고 맨발로 해변을 거닐던 두 서양 남자의 움직임이라든가, 아이들이 몰입하여 만든 모래성을 부수는 파도, 바다의 윤슬, 손을 꼭 잡은 채 바다를 향해 서 있던 연인들의 뒷모습(죽지도 않을 거면서). 그리고 여러 번 되뇌어보았던, 시인님이 보내온 시의 이런 구절.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것까지 다 내다본 나의 과거는 불쑥 나를 찾아와서 나를 가없게 보네" - 권누리 <포인트> 부분.
어떤 시는 위안을 주기보단 위안을 받기 위해 쓰이기도 하지요.
잘 지내시나요?
아프지는 않나요?
봄의 바다로 향하는 버스에서 시인님의 시를 멈칫멈칫 읽으며 저는 제 유년의, 생활의, 감정의, 사랑의 알코브를 떠올렸습니다. 알코브란 서양식 건축에서 벽의 한 부분을 쑥 들어가게 만들어놓는 곳을 뜻하지요.
"세계로부터 오목하게 패인"(권누리 <알코브> 부분) 그 공간에서 시는 탄생합니다. 시인님의 시가 안내하는 여기 이곳이면서 동시에 이곳이 아닌 장소,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지 않은 (듯한) 존재를 통과하면서 저는 한동안 머물지 않던 저의 오목한 공간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시공간을 우리는 '내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내면에 상처가 없는 사람도 없고 내면에 사랑이 없는 사람도 없다. 저는 그렇게 기도하며 "함부로 떳떳해지는"(권누리 <각주> 부분)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제 최초의 알코브는 교실의 흰 커튼 뒤더군요. 커튼 뒤로 쑥 들어가 있으면 커튼의 흐름과 저의 시간이 무관하게 느껴져서, 종종 창문에 입김을 불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단어를 적곤 했습니다. 너무 투명한 것을 원치 않아서, 곧 깨져버리길 바라면서. 그럼 그때만큼은 밖을 건너다볼 수 있었습니다. 미운 사람을 미워해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도 되었습니다.
어떤 시는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 쓰이기도 하지요.
살아있나요?
아직, 죽지는 않은 채로
제가 아침 해변에서 읽었던 책의 제목은 '환한 숨'(조해진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1)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편집자가 한 권의 책과 함께 보내온 다음과 같은 문장에 힘입어 한 계절을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평안한 봄 되세요.
그가 보내온 책의 제목은 '상처로 숨 쉬는 법'(김진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1)이었습니다.
이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김현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