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 만난 문장들

by 콩코드


문장이 시작되는 곳

여행은 늘 무언가를 데려온다.

사진 속 풍경이나 지도에 찍힌 좌표가 아니라,

그 순간 내 마음을 적시고 간 짧은 문장들.


어쩌면 우리는 먼 길을 떠나면서도,

결국은 하나의 문장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지도 모른다.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불쑥 내 안을 두드리는 문장이 튀어나온다.

거리의 벽에, 누군가의 노트에, 책방 구석에, 낡은 간판에.

그것들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해."

"길을 잃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야."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를 환영하고 있어."


나는 그것들을 주워 담았다.

주머니에 넣거나 마음속에 품거나.

때로는 카메라 대신 문장을 찍고,

기념품 대신 문장을 안고 돌아왔다.


문장이 시작되는 곳.

그곳이 바로, 진짜 여행의 시작이었다.


리스본, 길을 잃는다는 것

리스본의 어느 오후,

나는 지도를 접어 넣고 아무 골목이나 들어섰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 알록달록한 벽화,

가끔 삐걱대는 전차 소리.

그러다 발견한 곳, 오래된 작은 서점.

세상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쌓여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거기서 나는 한 문장을 만났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새로운 길을 만나는 것이다."


낡은 표지의 책 안쪽 면지에 적혀 있었다.

붉은 잉크로, 서툰 필체로.


나는 그 문장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 번 길을 헤맸고,

뜨거운 햇살에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이 마치 바람이 불어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풀려버린 듯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난 것이었다.


그 이후, 여행의 태도가 바뀌었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해하지 않았다.

걷다 길을 잃으면 그저 미소 지었다.

'또 다른 문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그 믿음 하나로 충분했다.


파리, 침묵을 듣는 법

파리는 늘 분주하고, 그 속에서 흐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파리의 침묵을 듣고 있다.

파리의 숨결을 느끼는 법은 간단하다.

그저 조금 멈추고, 고요한 순간을 찾아 들여다보는 것.

조용히 눈을 감고, 그곳에 존재하는 침묵을 흡수하는 것.


시끄러운 거리, 사람들의 말소리, 카페에서 쏟아지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도 침묵은 존재한다.

그 침묵은 혼자만의 고요함이 아니라,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하는 무언의 음악처럼 다가온다.


"파리는 늘 소리로 가득하지만, 그 소리는 결국 침묵으로 이어진다."

이 말을 나는 파리의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읽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침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들었던 침묵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고도 풍부한 소리였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 조금씩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고풍스러운 교회 종소리.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며 침묵 속에서 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파리의 침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파리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만났다.


숨겨진 공간에서 찾은 또 다른 파리

파리의 소리 없는 순간은,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 한가운데에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정원이나 카페에서 숨을 고르면,

그곳에서 파리의 침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생미셸 거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복잡한 거리의 한복판에서,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갑자기 고요해진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말을 하는 소리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풍경만 남는다.


그곳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저 공기와 시간이 스며드는 그 고요한 공간에서,

파리라는 도시가 진정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그때 깨달았다.

이 도시의 모든 소음 속에 숨어 있는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소리라는 것을.


침묵이 말하는 것

파리에서 만난 침묵은 일시적인 고요함을 넘어,

마치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풀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소리로 변환할 수 있다.

침묵은 단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그 속에는 지나온 역사와 삶의 흔적들이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파리에서의 침묵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다.

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벽 사이, 그곳에 흐르는 고요함을 감지하며,

나는 그 안에 숨겨진 시대의 숨결을 느꼈다.

그 소리 없는 흐름 속에서, 나는 한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었다.


파리의 침묵은 나에게 단순한 정적을 넘어,

하나의 경험이 되어 다가왔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세상의 소리들이 더 명확해지길 바랐다.

그저 소음을 넘어서, 깊은 곳에서 흐르는 진짜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그 이후, 태도

침묵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나는,

그 이후로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일상에서 나는 그 침묵을 찾아내려 했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가운데, 그 속에서 고요히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파리의 침묵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어디서든 고요함을 찾아내는 능력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후, 내가 파리에서 배운 태도는

단지 외부 세계를 듣는 법만이 아니었다.

그 침묵을 듣는 법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잠재된 이야기들을 조용히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내 존재의 깊이를 확인했고,

세상과 나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그 침묵이 주는 힘을 안다.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그 침묵의 깊이를,

나는 하루하루 더듬어 가며 배우고 있다.


베네치아, 흐르는 시간을 붙잡는 문장

- 골목과 물길 사이에서 발견한 문장의 조각들

베네치아는, 걸을 때마다 발밑이 흔들리는 도시였다. 땅 위를 걷는 것 같으면서도, 물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골목은 사라질 듯 얇아지고, 물길은 때때로 길을 끊는다. 걷다가 멈추고, 돌아가고, 다시 물가에 서서, 흐르는 수면을 따라 눈을 보낸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물처럼 흐른다. 아니, 시간마저도 베네치아에서는 물결의 일부가 되는 듯했다. 종종 발길을 멈추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석판과 휜 건물들이 흘러간 수백 년을 조용히 속삭이는 듯했다. 그 속에서, 나는 한 문장을 만났다.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떠맡기려 할수록 나를 데려간다."


어느 이름 없는 골목, 담쟁이가 드리운 벽 아래에 조그맣게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문득 마음이 조용해졌다. 여행이라는 것도 결국 흐르는 시간에 잠시 몸을 실어보는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베네치아에서는 '목적지'가 의미를 잃었다. 지도를 펴봐도 복잡하게 얽힌 골목과 운하들 앞에서는 늘 우스워졌다. '이 길이 맞을까?' '다시 돌아가야 할까?' 그렇게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문득문득 나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

어디에 닿고 싶은 걸까?


그리고 깨달았다. 중요한 건 방향이 아니라, 멈춰 서는 순간이었다.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물살이 섬세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햇살이 벽을 투명하게 적시는 그 순간. 베네치아에서는 그런 찰나들이 모여 하루를 만든다.


수많은 골목과 다리를 지나며, 나는 자주 그 문장을 떠올렸다.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였다. 흘러가버린다고 해서 허망한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도 남는 것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듯했다.


해가 저물 무렵, 나는 산마르코 광장 어귀에 서서 또 다른 문장을 만났다.

한 카페 벽에, 흐릿하게 남은 문장.


"언젠가 우리는, 이 물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만나는 것, 그것도 시간의 일부였다. 베네치아는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언젠가의 재회를 약속하는 도시였다. 흐르는 물길처럼, 잠시 스쳐가지만 다시 마음을 건드리는, 그런 문장처럼.


프라하, 오래된 벽의 속삭임

- 누군가 남긴 짧은 글귀

프라하는 오래된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였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벽돌 하나, 창틀 하나에도 시간이 스며 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말을 걸어왔다. 포석의 틈새마저, 무수한 발자국을 기억하는 듯했다.


비가 지나간 이른 아침, 나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멀찍이 벗어나 인적 드문 골목에 들어섰다. 물기를 머금은 벽은 어두운 담갈색으로 젖어 있었다. 그 벽 위에, 누군가 희미한 글귀를 남겼다.


"이곳에 왔음을 기억하라."


짧고 단단한 문장이었다.

마치 시간의 저편에서 건네는 속삭임 같았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그 벽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쉽게 흘려보내는 순간들이 있다.

‘언젠가 다시 오겠지’ 생각하며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들.

하지만 프라하에서는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벽마다, 창마다, 오래된 문들마다, 누군가의 시간과 손길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카를교를 천천히 건넜다.

여러 세기 동안 수많은 이들이 건너던 다리.

돌바닥을 따라 걷다가, 문득 손으로 교각의 난간을 쓸어보았다.

차가운 돌에 손바닥을 대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들었다.

지나간 시간들이, 오랜 발자국들이 내 손끝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프라하에서는 세상이 조용히 귓가에 말을 건넸다.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작고 오래된 것들이.

그곳에서는 벽이 노래하고, 돌이 기억하고, 바람마저 이야기를 품었다.


저녁 무렵, 황혼이 내린 골목 어귀에서 또 하나의 문장을 만났다.

낡은 벽 아래 조그맣게 새겨진 말.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나는 숨을 고르며 그 말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프라하에서는 '흔적'이 아니라 '존재'를 배우게 된다.

모든 것이 덧없이 흘러가는 듯해도, 벽에 새겨진 작은 글귀처럼

어딘가에는 분명히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이곳을, 이 순간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다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프라하는 그렇게, 나를 오래된 시간 속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속삭였다.

'여기 있었던 너를, 나도 기억할게.‘


몬트뢰, 호수 위를 스치는 노래

- 문장과 음악이 겹치는 순간

몬트뢰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잔잔한 호수였다.

레만 호수.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에, 하늘과 구름과 산의 윤곽이 어렴풋이 비쳤다.

나는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지나가면 수면이 살짝 흔들렸고, 그 흔들림 위로 햇빛이 부서졌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모든 것이 음악 같았다.


몬트뢰는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한 도시다.

곳곳에 흘러나오는 선율은 무심하지만 섬세했다.

호숫가를 따라 걷는 동안, 나는 크고 작은 음악들을 만났다.

어디선가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기타,

공원의 벤치에 앉은 누군가가 조심스레 튕기는 우쿨렐레,

작은 카페 창가를 채운 느린 재즈의 리듬.


나는 호수 옆 오래된 산책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서 있었다.

두 팔을 높이 치켜든 그의 모습이, 호수와 하늘을 향해 노래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췄다.


'이 순간이 노래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스쳤다.

멜로디도, 가사도 없는, 다만 빛과 바람과 물소리로 채워진 하나의 노래.

나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마음속 문장들을 얹어 보았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은 아무 말 없이 노래하고 있다."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가 나오는 동안, 주인이 튼 노래가 낯익었다.

키이루 사카모토의 ‘Solitude’였다.

피아노가 조용히 흐르고, 멜로디는 호수처럼 깊게 잦아들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호수가 미세하게 출렁이고,

사람들이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는 풍경.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리듬을 지녔다.


그때 깨달았다.

몬트뢰에서는, 문장도 음악처럼 태어난다는 것을.

어떤 것은 조용하고, 어떤 것은 경쾌하고, 어떤 것은 오래도록 마음에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쩌면 하나의 긴 노래였을지도 모른다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손끝에서 망설이듯 나온 글귀.


"시간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흐른다."


나는 그 문장을 노트에 천천히 새겼다.

바람이 노트의 페이지를 가볍게 넘겼다.

음악과 문장이 겹치는 순간, 여행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때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단지 느끼고, 흘러가고, 마음속 어딘가에 남겨두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몬트뢰의 호수는 그렇게 조용히 노래했고,

나는 그 노래를 조심스레 마음에 담아두었다.


작은 도시, 작은 카페, 작은 노트

- 여행 노트에 적어 넣은 문장들

여행길에서 작은 도시에 머무는 일은,

긴 문장을 잠시 접고 짧은 숨을 고르는 것과 비슷했다.


몽트뢰를 지나, 나는 이름 모를 작은 도시로 향했다.

기차역은 작았고,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기차가 멈추고, 나는 가볍게 가방을 둘러멘 채 플랫폼에 발을 내렸다.


도시의 중심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남짓.

좁은 골목길을 지나, 작은 광장과 오래된 분수대를 만났다.

그리고 그 광장 한쪽에, 조심스럽게 숨어 있듯 자리 잡은 작은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피 볶는 냄새가 부드럽게 퍼졌다.

벽에는 손으로 쓴 작은 글귀들이 걸려 있었고,

낡은 나무 의자와 흔들의자, 빛이 바랜 책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나는 구석진 창가 자리를 골랐다.

창문 너머로는 좁은 골목길이 보였고,

때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동안,

가방 속에 넣어 다니던 작은 노트를 꺼냈다.

그 노트는, 떠나오기 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여행 노트였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비어 있었고,

나는 그 빈칸을 여행 중에 만난 문장들로 천천히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노트에 조심스럽게 썼다.


"모든 작은 것은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된다."


창밖을 바라보며 문장을 쓴다.

그러다 문득, 벽에 걸린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행자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자신을 찾는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노트에 그 문장도 옮겨 적었다.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 여행이라는 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카페 한쪽에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노트가 놓여 있었다.

지나간 여행자들이 남긴 메시지들이 빼곡했다.

"행복은 이곳에 있네요."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짧은 여정이지만, 깊게 기억될 거예요."


나는 그 낡은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그리고 조심스레 적었다.


"오늘의 나를 이곳에 남깁니다."


작은 카페의 오후는 천천히 흘렀다.

밖에서는 종종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커피 잔 위로 빛이 사각형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여행의 끝을 서두르지 않았다.

어쩌면 여행이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일지도 몰랐다.


커피를 다 마시고, 노트를 가방에 다시 넣으며 다짐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도시를 만날 때마다,

조그만 카페를 찾아 이 작은 노트를 펼치리라고.

그리고 그 도시만의 숨결을, 짧은 문장으로 기록하리라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따스한 햇빛이 골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가방 속, 작은 노트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이미 수많은 작은 세계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문장을 따라 걷는 여행

- 내 안에 쌓여가는 문장들의 여행지도

처음부터 문장을 찾아 여행을 떠났던 건 아니었다.

그저 길 위에 서고 싶었고, 낯선 곳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걷고 또 걸으며 알게 됐다.

나는 풍경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스며든 문장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걸.


도시의 오래된 벽에, 골목길의 전봇대에,

카페의 손때 묻은 메뉴판에,

책방 구석에 꽂힌 낡은 책 한 권의 표지에,

심지어 바람에 휘날리는 광고 전단 한 장에 이르기까지

문장들은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가끔은 아무런 기대 없이 지나가던 길에서,

어떤 문장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붙잡았다.

그럴 때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렀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멀리서 온 마음에게 길을 열어주어라."

"모든 길은 결국 집으로 향한다."


그런 문장들은 지도에도, 여행 책자에도 실려 있지 않았다.

오직 길 위를 걷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하나둘 가슴에 품으며,

나만의 '문장의 지도'를 만들어갔다.


그 지도에는 거대한 랜드마크 대신,

짧은 순간 포착한 문장들이 점처럼 찍혀 있었다.

파리의 어느 다리 난간,

베네치아의 물비린내 가득한 골목,

프라하 성벽을 타고 흐르는 이끼 내음,

몽트뢰 호숫가의 투명한 바람.


어디에도 같은 문장은 없었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도, 같은 느낌으로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문장도, 순간도, 오직 그때뿐이었다.


때로는 문장을 따라 여행의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어느 날, 작은 책방 앞에 쓰인 한 문장을 보고,

계획에 없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선 적도 있다.

그 길 끝에서 만난 낡은 성당과,

거기서 들려온 오후 종소리는

나에게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나는 점점, 무언가를 목적 삼아 찾는 여행자가 아니라,

길 위에서 문장과 순간을 만나기 위해 걷는 여행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문장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따라 걷는 것이라는 것을.


떠나온 곳과 닿아 있는 어떤 감정들,

잊었다고 생각한 오래전 기억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의 한 조각들이

문장을 매개로 불쑥불쑥 나타났다.


내 안에 쌓여가는 문장들은,

언젠가는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작은 점과 점일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무르익으면

그 점들은 선이 되고, 풍경이 되고, 나만의 지도가 될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어떤 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방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서는 나를.

그때도 여전히, 문장을 찾아 걷고 있을까.

아니면, 문장이 나를 찾아올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다시 걸어 나서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따라, 또 다른 문장을 만나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문장 하나를 기다리며,

마음속 작은 여행 지도를 조용히 펼쳐본다.


여행이 끝난 자리에서, 다시 문장을 펼치다

- 돌아온 일상에서 문장이 건네는 위로


여행이 끝날 때마다 나는 늘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하나는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마치 꿈처럼 아련하게 남을 것 같다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낯설음이다.


길을 떠나기 전, 나는 여행이 끝난 후의 삶을 상상하지 않는다.

떠날 때는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보고 느낄지에 대한 호기심에 가슴이 뛰기만 한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다시 나만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어딘가 허전함을 느낀다.

그곳의 공기와 사람들, 풍경 속에서 내내 누려왔던 감각들이

모든 것이 '지나간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앉아 있으면,

손에 쥐고 있던 지도와 티켓, 입었던 옷, 그곳의 풍경이

이상하게 먼 기억처럼 희미해져간다.

그리고 내가 떠났던 그 장소에서 남긴 흔적들은

마치 잠깐 펼쳐놓은 한 장의 문장이었던 것처럼

내 일상 속에서 사라져버린 듯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돌아온 자리에서 다시 문장을 찾는다.

내가 여행 중에 마주했던 그 문장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간 그 한 마디,

내가 그때만큼은 진지하게 들었던 그 단어들이,

나에게 조금씩 다가와서 다시 내 안에 녹아든다.


나는 일상 속에서 그 문장들을 다시 펼쳐본다.

그리고 그 문장이 건네는 위로를 받아들인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길을 잃었지만 결국 우리가 찾은 길은 우리의 것이었다."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나면 그때는 우리가 더욱 풍성해져 있을 거야."

"여행은 끝났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만난 순간들은 영원히 계속될 거야."


이 문장들은 내가 여행 중에 적은 것이거나,

혹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말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말이기도 하고,

또 다른 것들은 내 마음속에서 스며든 기억들이었다.


돌아온 일상에서 나는 그 문장들을 다시 펼치며,

그 속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의미를 찾는다.

그것은 단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가 놓쳤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여전히 그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깨달음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떤 날은 길을 걸으며,

그 문장이 떠올라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 문장이 나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를 마음 깊이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은,

책을 펼쳤을 때 그 문장이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이 끝난 자리는,

단지 과거의 추억이 아닌,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된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여행 중에 만났던 문장들을 떠올리며,

그 문장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다시 나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이제 나는 여행이 끝난 후에도,

매일매일 문장을 찾으며 걸어간다.

그때 만났던 문장들이 내 삶에 스며들어,

내 길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된다.

내가 다시 길을 떠날 때까지,

그 문장들은 내가 걸어갈 길 위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여행을 떠날 때면,

새로운 문장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여행은 끝났지만, 문장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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