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晏然) 제5장
사마우가 우울해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 혼자만 없다오.”
자하가 말했다. “이 복상(자하의 본명)이 듣건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군자는 신중하게 처신하여 실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공손하며 예의를 지킵니다. 그러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형제가 없다고 걱정하십니까?”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사마우우왈 인개유형제 아독무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자하왈 상문지의 사생유명 부귀재천 군자경이무실 여인공이유례 사해지내개형제야 군자하환호무형제야
사마우는 공자의 제자로서 사마천의 ‘중니제자열전’에 소개된 35인 중 한 명입니다. 성이 사마(司馬), 이름은 경(耕), 자는 자우(子牛)였다고 합니다. 나이나 출신국에 대한 정보도 없고 ‘논어’에서도 안연 편에 연달아 등장하는 3개의 에피소드에서 질문자로만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서가 ‘춘추좌전’입니다. 송나라 대부로 병권을 쥔 사마(司馬) 벼슬을 지낸 뒤 모반을 일으키는 환퇴(桓魋)라는 인물이 본디 송나라 귀족 가문인 상(向)씨 5형제 중 둘째인데 사마우가 그의 세 동생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 후대 편집된 ‘공자가어’는 이를 토대로 사마우가 사마환퇴의 동생으로 환퇴가 벼슬 명을 새로운 성씨로 삼아 상퇴에서 사마환퇴가 되고 동생인 사마우도 이를 따라 사마를 성씨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대다수 주석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엔 3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사마우는 공자의 제자인데 그 형인 사마환퇴는 공자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와 채나라를 떠돌 당시 공자를 죽이려고 테러를 사주한 인물(‘논어’ 7편 ‘술이’ 제24장)이라는 점입니다. 형제지간이라 했을 때 공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상반됩니다. 이에 대해선 공문의 제자로서 사마우가 형의 불의함과 부덕함을 비판함에 따라 사마환퇴가 공자에게 반감을 품게 돼 그렇다는 설명이 따라붙습니다. 정작 동생은 놔두고 왜 그 스승부터 죽이려했다는 것인지 의아한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바로 이 장에서 사마우 자신이 “나만 유독 형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굳이 사마환퇴의 동생이라주장하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불의를 저지른 형과 의절했기에 형제가 없다고 한 것이라는 해석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사마우 자신이 직접 언급한 발언이 없기에 구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석을 위한 해석’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셋째 사마우의 원래 성씨가 상(向)씨인데 왜 장자도 아닌 둘째형의 성을 따라서 쓰느냐는 것입니다. 실제 장자였던 상소(向巢)는 계속 상 씨를 썼으며 사마환퇴가 모반을 일으키자 송나라 제후(송경공)의 편에 섰던 인물이었습니다. 헌데 둘째형의 처신을 매섭게 비판한 동생이 굳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놔두고 그 형이 창성한 성씨를 따라 쓴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또 사마환퇴와 의절했다 해도 맏형인 상소가 있기에 형제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3가지를 고려해보면 사마우를 송나라 대부 사마환퇴의 동생으로 가정하는 것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한 후대의 작위적 설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따라서 사마우는 사마환퇴와 별개의 독립적 인물로 보는 것이 올바른 대우 아닐까요?
독립적 인물로서 사마우는 형제가 없어서 외로움을 많아 타고, 평소 근심 걱정이 많으며 그래서인지 주변에 말이 많았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도덕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마우가 얄팍한 인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관점에서 보면 빈구석이 많지만 빈구석을 주변에서 채워주고 싶게끔 만드는 인간미를 지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승인 공자뿐 아니라 동학 내지 후학이었을 자하조차도 이렇게 우애 어린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 아닐까요?
주희와 같은 송유들은 자하의 이 발언이 내심 못마땅합니다. 훗날 맹자가 금수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 묵자의 사상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묵자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겸애(兼愛)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맹자는 혈연으로 맺어지고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부모형제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똑같이 대우할 수도 없고 대우해서도 안 된다면서 겸애를 무분별한 사랑이라 비판했습니다.
묵자의 겸애는 프랑스혁명 3대 정신 중 하나인 박애와 연결됩니다. 사해동포주의 내지 세계시민주의입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비판할지언정 인류가 그 근사치로라도 접근해야 할 길임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자하의 발언은 그와 궤를 같이합니다. “그대와 나는 군자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입니다. 군자라면 정성을 다하는 경(敬)과 상대를 섬기는 공(恭)의 자세로 사해 만민의 백성을 대해야 합니다. 이는 곧 그들을 나의 형제나 다름없이 대하는 것이니 어찌 형제 없는 외로움을 말하리오?”
이 말에는 자하가 사마우를 형제처럼 여긴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군자의 길을 걸으려는 공문의 제자들은 모두 당신을 형제와 같이 여기니 너무 외로워말라는 위로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논어’에서 붕(朋)은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죽마고우(竹馬故友)에 가깝고, 우(友)는 의기투합한 지란지우(芝蘭之友)에 가깝다는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공문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지란지우의 성격이 강하지만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한 경우도 많았기에 죽마고우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서로를 형제처럼 여기지 않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