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쌓기만큼 어려운 도 닦기

4편 이인(里仁) 제8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자왈 조문도 석사가의



가장 유명한 ‘논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전통적 해석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말년의 공자가 천하의 정치가 무도해진 것을 한탄하며 제대로 된 통치자가 나와 다시 도를 바로 세웠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날로 숨을 거둬도 여한이 없겠다고 통탄했다는 것입니다.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강조됩니다. 두 번째는 궁극의 진리로서 도를 깨닫는 날이 온다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적 진리 추구를 중시하는 성리학적 해석입니다.


다음은 군자학에 입각한 제 해석입니다. 도는 객관적 세계원리, 덕은 주관적 인격수양, 인은 도와 덕을 겸비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도와 덕을 갖춘 사람을 공자는 생지(生知)라 불렀으니 극소수 성인만 가능한 경지입니다. 공자 자신은 배워서 도와 덕을 갖추는 학지(學知)로 여겼습니다.


이때 덕은 내 마음의 밭을 일궈서 키워내는 것이니 후천적 노력으로 어느 정도 성취 가능합니다. 허나 도는 공부한다고 반드시 터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움을 통해 단계적 또는 분야별 도를 터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세상만사를 꿰뚫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는 제자임에도 안연이나 민자건에 비하면 자신의 덕이 많이 부족하다고 여겼습니다. 덕을 함양하기 위한 수양이 필요하다고 자인한 것입니다. 반면 도를 터득하기 위한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서 호학(好學)에 대한 자부심은 넘쳤습니다. 다시 말해 어짊을 완성함에 있어서 덕보다 도에서 더 앞서 있다고 자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장은 바로 그러한 이해가 오산임을 일깨워주기 위한 반전의 일갈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무리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도를 터득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자기 고백인 것입니다. “나처럼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감히 도를 터득했다고 할 수 없어 배움을 멈추지 않으니 너희들 역시 함부로 도를 깨쳤다 말하지 말고 정진 또 정지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관적 인격수양보다 객관적 세계이해가 더 어렵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知德者鮮矣‧15편 ‘위령공’ 제4장)”라고 통탄했던 공자의 발언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덕 쌓기만큼 도 닦기도 쉽지 않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그 양자를 겸비해야 하는 ‘어진 정치’의 실현이 어렵고 또 힘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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