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이인(里仁) 제7장
공자가 말했다. “사람의 잘못은 그 성향에 따라 유형화할 수 있다. 그 잘못을 관찰해 보면 그가 어진 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자왈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
우리말로 풀어놓고 보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문제는 정작 공자가 하고픈 말이 뭔지가 아리송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한나라 때의 고주(古註)와 송나라 때 신주(新註)를 나란히 비교하곤 합니다. 그 핵심은 앞 구절과 뒷 구절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앞 구절은 크게 2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무리, 당파, 계급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같은 집단적 정체성이 강조되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잘못은 그 성향에 따라 범주화, 유형화가 가능하다는 해석입니다. 사주팔자나 별자리, 혈액형, MBTI처럼 성격 유형이 강조되는 해석입니다.
‘관과지인(觀過知仁)’으로 요약되는 뒷 구절은 잘못을 관찰해 보면 그가 어진 지 아닌지를 안다는 뜻입니다. 즉 어진 사람과 어질지 못한 사람을 그 잘못의 유형을 보고 판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주는 이를 다시 앞 구절에 적용해 당(黨)을 군자와 소인이란 집단적 정체성으로 풀어냅니다.
반면 신주는 그보다는 좀 더 열린 성향으로 풀어냅니다. “군자는 무리를 짓되 당파를 만들진 않는다”(15편 ‘위령공’ 제22장)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자(정이)는 “군자는 항상 후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소인은 항상 박해서 실수를 저지르며 군자는 사랑이 넘치고 소인은 잔인함이 넘친다”라고 잘못을 유형화합니다.
뒷 구절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어진 사람도 잘못을 저지른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점입니다. 맙소사, 어진 사람은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잘못을 덜 저지르고 또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으면 바로잡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게 되면 고주와 신주의 차이는 주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뒷 구절에 있으며, 그 핵심은 공자가 강조했던 물탄개과(勿憚改過)를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 어진 사람이라는 가르침의 변주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잘못을 관찰한다는 의미가 잘못의 유형을 분류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뒤 그를 어떻게 수습하는지 까지를 관찰 해보면 어진 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