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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Dec 08. 2023

공자는 왜 하필 그릇을 떠올렸을까?

2편 위정(爲政) 제12장

  공자가 말씀했다. "군자는 그릇으로 쓸 수 없다."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역시 많이 인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릇 기(器)를 도구로 풀어서 “군자는 도구가 아니다”로 풀이하는 경우가 이해가 쉽습니다. 이는 칸트의 정언명령과 공명해 “군자는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로 확장됩니다. 또한 군자는 전문적 지식인(스페셜리스트)에 머물러선 안 되고 종합적 지식인(제너럴리스트)을 지향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확실히 현대적 감각에 맞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왜 하필 器라는 표현을 썼느냐입니다.  공자가 어린 시절부터 갖고 놀았고 커서도 예(禮) 전문가로서 가장 익숙했던 기물이 제기(祭器)였기 때문입니다.  

    

  군사의 일을 질문한 위령공에게 공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조두지사(俎豆之事)에 대해선 일찍 들은 바가 있지만은 군려지사(軍旅之事)에 대해선 배운 바가 없습니다.”(15편 ‘위령공’ 제1장), 여기서 조두지사의 조(俎)는 고기를 담는 제기, 두(豆)는 채소를 담는 제기를 뜻합니다. 또 공자로부터 “너는 그릇이다”라는 말을 들은 자공이 “그럼 어떤 그릇이냐?”라고 물었을 때 공자의 답 또한 가장 화려한 제기인 호련(瑚璉)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불기(不器)는 “그릇이 아니다”가 아니라 “그릇으로 쓸 수 없다”로 봐야 합니다. 기가 명사로 쓰였다면 ‘비기(非器)’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따라서 不器라고 쓸 때의 器는 동사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접목해 공자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을 상상해 보십시오. 뭐가 보이십니까? 각종 의례 전문가인 유안(孺人)들이 제사상에 놓을 제기의 위치를 두고 ‘조율이시(棗栗梨柿)’니 ‘홍동백서(紅東白西)’이니 하며 따지는 모습입니다. 우리 속담에 ‘감 놔라 배 놔라’한다가 포착한 모습입니다.  

   

  공자의 발언은 그런 익숙한 그림을 지워버리기 위한 도리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군자는 그런 조두지사에 집착하는 백면서생이나 꽁생원과 차원이 다른 사람이야. 그들이 겨우 아는 제사상에 올릴 제기 따위로는 감히 남아낼 수 없는 존재라고!” 좀 더 단순한 표현을 써서 말한다면 “군자는 장기판의 말 다루 듯 다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군자학이 유인들의 예학(禮學)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자가 구상한 군자학은 그러한 의례 전문가들의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번문욕례(繁文縟禮)를 훌쩍 뛰어넘어 극기복례(克己復禮)와 박문악례(博文約禮)를 지향하는 학문입니다. 무수한 의례의 초석이 된 근본정신으로 돌아가 안으로는 스스로를 다스리고, 밖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를 재발견하는 보다 고차원의 학문인 것입니다. 

    

  군자불기라는 짧은 표현 안에는 이렇게 유학이 아니라 군자학을 지향하는 공자의 강렬한 열망이 응축돼 있습니다. 공자의 이런 생각은 ‘주역’을 만나면서 더욱 심화됩니다. 예의 형식에 집착해 조두지사에 머무는 것(유학)이 형이하학이라면 예의 근본정신을 되살려 치평지사(治平之事)를 지향하는 것(군자학)은 형이상학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주역’ 계사전에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도라 하고, 형이하학적인 것을 기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가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종합하면 군자불기는 처음엔 군자라는 존재는 의례에 대해 좀 안다는 유인들의 지엽말단의 지식으로는 담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에서 출발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다 그 의미가 심화하고 확장하면서 군자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보편적 지식인이어야 하고, 피상적 상식을 갖춘 사람을 뛰어넘어 심층적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다로 발전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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