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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Apr 04. 2017

이별의 이별

문득


힘겹게 맞이하는 평일의 이른 아침.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지갑.. 핸드폰.. 사원증.. 아.. 그리고 또 뭐드라..' 혼잣말을 얹어 핸드백에 이것저것 쑤셔 넣기 바빴다. 현관 앞, 오버코트 속에 나를 구겨 넣고 크게 한 번 내벧은 심호흡을 각오로 추운 출근길을 나섰다. 그런데 '어..?' 현관 밖 이른 아침은 생각과 달리 춥지 않았다. 두 볼에 닿은 아침 공기가 시리지 않았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발 밑에서 나는 뽀드득 눈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던 이번 겨울의 일이 벌써 엊그제가 되었던가. 깜깜한 새벽하늘 가로등 아래 주황빛 눈이 소복한 그의 출근길이 혹여나 미끄럽지나 않을지 걱정하던 그 계절 말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되는 거였나.


그토록 시간만 지나길 기다린 적이 있었을까. 이별엔 시간이 약이라는 오래된 그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소주잔에 담긴 술이 찰랑거릴 때마다 그를 아파했다. 그의 부재를 위로 하기 위한 덧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기도하듯 두 눈을 꼭 감고 흘러가버리길 기다렸다. 그러다 오늘 아침 갑자기 이 겨울이 끝나가는 것을 안 것처럼, 내가 그를 더 이상 매일매일 아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그리 버겁고 가파르기만 하던 이별의 소용돌이가 막상 가라앉은 것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허전한 기분마저 든다. 이런 나를 알면 그는 배신감에 젖진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걱정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직은 약간 쌀쌀한 저녁을 가로질러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의자를 딛고선 높은 찬장에서 투명하고 마개 없는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바싹 마른 꽃 머리를 톡 따자 바스락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와 함께 꽃 머리는 유리병에 고스란히 담겼다. 꽃들을 오롯하게 감싸고 있던 연분홍 포장지는 그 얌전한 자태만큼 고왔고, 이제는 유리 꽃병의 주둥이를 우아하게 덮어주었다. 그렇게 잘 마른 꽃잎들의 색 바랜 소리가 잘 보이는 유리병 안에 너의 마지막 잔재를 소복이 그리고 담담하게 담았다. 내가 스며들었던 너의 계절을 품어두기 위해. 그리고 네가 없는 오롯한 나의 계절을 새로이 맞이하게 위해.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이 깜깜하고 추운 겨울아니 이별의 끝이 옴싹달싹이고 있음을 문득 알게 된다. 내 옷장 안에서 봄을 기다리는 풋풋한 하늘의 색을 빼담은 청자켓이 곧 두근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내 곧 보풀이 일어난 양말 안에 얌전했던 발가락들이 꼼지락 거릴만큼 기분 좋은 조급한 마음이 서서히 들 것이다. 그런 게 겨울의 끝인 봄이자, 이별의 끝인 시작이라고들 하니까. 그렇게 나는 꿋꿋하게 그를 잘 보내고 또 다른 희망을 품어보고자 욕심을 내보기 시작하는 오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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