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밀리리터의 마음

by 고양이

우유 거품을 내고 남은 종이팩에 육포 조각을 채워 넣는다.

입구를 단단히 여미며 생각한다. 왜 우유팩은 900밀리리터일까. 마음 편하게 1리터면 좋았을 텐데.

100밀리리터만큼 모자란 숫자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이 미묘한 결핍은 출근 직전 마당으로 힘껏 던져지는 종이팩의 궤적과 닮았다. 녀석은 그 모자란 숫자를 채우려는 듯 열정적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달려 나갔다.


어느 날은 순했던 얼굴이 건달처럼 돌아왔다.

담벼락 위 고양이에게 건넨 서툰 인사가 콧잔등에 붉은 흉터로 남은 것이다.

진짜 건달은 본 적 없지만 동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술 취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저랬을까 싶다. 녀석은 아프다는 말 대신 제 혀로 콧잔등을 연신 핥았다.

기어이 덧이 나 마데카솔연고를 발라주자 며칠도 안 되어 말끔해진 코를 들이민다. 짐승의 회복력은 어쩐지 서글픈 구석이 있다.


하얀 발이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던 날, 나는 장미 가시를 탓했다. 담장 위 경계는 원래 사람의 것이지 녀석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상처를 입고도 아픈 기색 없이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짠한 습기가 찬다.


비 온 뒤 스멀스멀 올라오는 찝찝한 냄새가 아래에서 느껴지면 녀석은 어김없이 내 다리에 턱을 괴고 누워 있다. 목욕시킬 걱정에 한숨이 먼저 나오지만 물줄기만 닿으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통에 나는 자꾸만 유년의 어느 기억 속으로 도망친다.

복날, 동네 어귀에서 들려오던 그 처절한 울음소리. 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숨 가쁘게 달리던 어린 나의 발등 위로 지금의 녀석이 겹쳐진다.


이제 녀석은 목줄이 풀려도 달아나지 않는다.

끊어진 줄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줄 안다.

제 잘못이 아님에도 불쌍한 표정을 짓는 영악함.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다가도 이내 미안함에 잠긴다.

불쌍하다는 감정은 자꾸만 꼬리를 물고 몸집을 불려, 결국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