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커피에 설탕을 넣었을까.

by 고양이

커피를 마시는 일은 바닥을 확인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김이 서린 첫 모금의 화려함이 지나가고 잔 속의 검은 액체가 점점 수평을 낮추며 바닥을 드러낼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오늘 잔을 비우고 나서야 바닥에 눌어붙은 투명한 결정들을 보았다.

충분히 저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녹지 못한 설탕 알갱이들이 서로의 몸을 포갠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 마시고 나서야 발견되는, 너무 무거워서 끝내 섞이지 못한 진심의 찌꺼기 같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진심을 바닥으로 가라앉히며 살고 있었을까.

"괜찮아"라는 말 밑에는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아"라는 단단한 결정이 깔려 있고, "다음에 봐"라는 인사 뒤에는 "사실은 지금 붙잡고 싶어"라는 무게가 고여 있었다.


상대와 마주 앉아 나누는 수많은 문장은 가볍게 수면 위를 떠다니지만 정작 전달하고 싶었던 핵심은 액체 아래로 침잠해 끝내 녹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찻숟가락으로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물성(物性)을 잃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더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화가 식어가고 잔 속의 온기가 사라질 때쯤에야 비로소 "아,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어"라고 말하는 뒤늦은 고백처럼.


나는 찻숟가락을 들어 그 딱딱한 결정들을 긁어본다.

달콤해야 할 설탕은 이미 식어버려 서늘한 감촉만을 전달한다.


전하지 못한 말들은 대개 무거워서, 공기 중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앉아 헤어진 뒤에는 홀로 남겨진 잔 속에서 뒤늦게 반짝였다.


나는 잔 바닥을 들여다보며 깨닫는다.

그가 비워낸 잔 바닥에도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무겁고 투명한 결정들이 가득했으리라는 것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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