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개미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어제저녁 뭔가를 먹고 식탁을 닦지 않았을 것이다. 음식 먹은 자리를 말끔히 닦지 않으면 어김없이 개미가 꼬인다.
소독약을 뿌리고 물티슈로 닦아내면서 ‘너희들도 먹을 것을 찾아 나온 게지’ 하였다.
우리 집 개미에 대해 나는 할 말이 많다.
개미가 발견된 것은 내가 집안에 화분을 들여온 시기와 비슷하다. 10년 전쯤 다른 학교로 전근했을 무렵일까.
마음이 힘들 때면 화분의 연둣빛 줄기를 쓰다듬었다. 마치 나를 안아주듯이, 어깨를 토닥이듯이, 등을 쓸어내듯이 여린 줄기를 쓰다듬으며 ‘잘 자라거라’ 되뇌고 그저 가지를 살짝 흔들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식물이 주는 위안에 하나 둘 화분을 들여놓을 무렵, 지푸라기로 짠 화분 밑에 우글대는 연한 갈색의 개미 군집을 보았다. 질겁하여 화분받침과 화분을 통째로 버렸다. 그때부터 집안 곳곳에서 개미가 수시로 발견되었다. 개미의 종류는 한 가지. 붉은빛 도는 연한 갈색의 작은 개미.
개미는 특히 부엌에 창궐하였다. 창궐(猖獗)이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식탁이나 부엌에 음식을 올려놓으면 여지없이 개미가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깎아 놓은 배 접시 위에 달라붙은 개미를 보고 한편 귀엽다는 생각도 하였다. 우리 집 개미는 과일을 좋아하는 귀여운 과일개미야! 하며.
시간이 갈수록 개미가 달라붙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과채류 육류 가릴 것이 없었다. 모든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식탁 위에 깜박하고 올려놓은 계란프라이(흰자 부분은 먹고 노른자 부분만 남아있던)가 멀쩡하여 ‘어찌 개미가 안 보이네’ 하며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려 하였다. 순간 노른자 밑에 까맣게 몰려있는 개미 떼를 발견하였다. 기겁을 하면서도 어이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밑에 모여있는 개미들은 계란프라이를 어깨로 짊어지고 영차! 영차! 제집으로 들고 가려했을까.
이제 개미는 안방이며 거실이며 화장실이며 집안 곳곳에서 출몰하였다. 정기적으로 방역해 주시는 분께 개미약을 부탁하여 여기저기 놓았다. 개미의 종류가 무엇인지 찾아 그에 알맞은 약을 구해 보려 하였다. 개미의 인상착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우리 집 개미는 귀여운 과일개미가 아닌 '육식개미'의 한 종류인 것 같았다. 육식개미라고 생각하니 더 신경이 쓰였다. 약국에서 이약 저 약 사다가 붙이고, 뿌리고, 가루로 내어놓았다. 그러나 약을 놓으면 잠시 사라진 듯하다가도 내성이 생겼는지 개미는 계속 나왔다.
개미로 골머리를 썩을 무렵 다른 집에서도 개미약을 신청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집만은 아니었군. 안심도 잠시, 몇 주 지나 방역 나온 분께 다른 집의 개미상황을 물었다. 더 이상 개미약신청을 안 한다고 하였다.
이건 뭐지? 다른 집은 개미가 없다는 얘기?
우리 집은 여전히 개미와의 전쟁을 치렀다. 정확히 말하면 나만 전쟁 중이었다. 개미에 대한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호소하면 “나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왜 그러냐” 한다. 부엌과 식탁에 머무는 일이 많은 주부이기에 개미가 내 눈에 더 눈에 띄었을 수 있긴 하다. 개미가 떼로 몰린 실시간 현장을 놓칠세라 보여주면 "개미가 있네"할 뿐이었다. 우리 집에서 개미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나 혼자인 듯 외로웠다.
그 어떤 용하다는 약을 쓰고, 개미가 싫어하는 소리가 난다는 전자기기를 써봐도, 페퍼민트 향을, 커피가루를 또는 개미가 싫어한다는 온갖 향 나는 것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개미가 없는 곳이 없는 탓에, 잠자고 있을 때 개미가 내 몸을 기어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비염이 생긴 것도, 자꾸 목이 칼칼해지는 것도 개미가 꽁무니로 뿌리고 다니는 안 좋은 성분 때문일 거라고 의심했다. 부쩍 늘어난 가려움증도 개미 때문이고, 귀 속이 가려운 것도 개미가 귓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야말로 개미지옥이었다.
지인을 만나면 우리 집은 개미지옥이다 호소하였다. 실제로 ‘개미지옥’이라는 곤충이 있는 탓에 그것을 떠올리며 이 표현이 맞나? 말을 조금 더듬기도 했지만, 그 스트레스상황은 정말 개미지옥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었다.
약도 향도 전자기기로도 개미를 몰아내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내게 위로를 주던 소중한 화분들도 처분하기로 하였다. 화분 근처에서 개미가 돌아다니거나 화분 속에서 개미가 나오는 일은 없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해충이 싫어하는 향기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제라늄과 확실히 개미가 없는 것으로 여러 번 확인한 큰 해피트리만 남겼다. 사랑하는 식물들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갖은 방법을 써도 소용없는 것을 보니 집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미가 많이 출몰하는 싱크대를 비롯하여 25년이 되어가는 이 집을 통째로 비워내거나, 전체를 리모델링해야만 개미를 박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집을 바꾸지는 못할 처지인데 이를 어쩐다? 그냥 개미와 같이 살아야 하나?
개미와의 전쟁에 지친 나는 ‘개미와 공생’ 하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기울었다. 개미와 대치하는 상황이 너무 피로하였다. 말이 '공생'이지 사실상 개미에게 항복하는 것이고, 개미와 '휴전'하는 것이다.
몰아낼 수 없으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개미는 모르는 나 혼자만의' 휴전서약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제1조, 정기적으로 개미약을 설치한 이후엔 개미생각 금지. 한두 마리쯤은 그냥 봐준다.
제2조, 모든 음식물은 식탁이나 싱크대, 기타 공간에 남겨놓지 않는다. 냉장고에 바로바로 넣는다.
제3조, 마음의 평안을 위해 개미에 대한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환한다. 개미를 이해해 보자.
어떤 대상에 대한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려면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개미로 이 꼴 저 꼴 다 보다 보니 무뎌졌는지 개미를 보고 인상 찌푸릴 힘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개미를 보고 분노해 봤자 그것들은 내가 저에게 화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화내는 내 얼굴의 주름과 스트레스만 늘어나니 결국 내 손해인 것이다.
이제는 개미를 보면
‘너도 살아가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지. 너희들도 애쓰는구나. 우리와 같이 안쓰럽구나.' 뇌까린다.
물론 마음속엔 반대의 마음이 요동치지만 소리 내 말하며 의식적으로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연민을 가지면 혐오가 줄어든다. 혐오가 줄어들어야 부정적인 마음이 주는 스트레스도 작아진다. 이거야말로 개미를 몰아낼 수 없어서 생각해 낸 고육지책인 셈인데, 어쨌건 나는 개미와의 전쟁을 이런 방법으로 승화시켜 마침내 정신승리하기로 하였다.
오늘 식사하고 바로 치우지 않은 자리, 고등어구이를 먹고 난 자리에 슬슬 나타나는 개미를 보며 순간 ‘이놈의 개미들은 왜 우리 집에만 보이는 거야’ 속마음이 튀어나온다.
숨을 내쉬고, 고개를 젓고 가슴에 손을 얹는다.
개미는 절대 모를 내 맘대로 휴전협정 3조를 떠올리며
‘오늘도 너희들은 먹이를 찾아왔구나. 공동체의 먹을거리를 찾아 일개미로서의 직분을 열심히 수행하는구나’
소리 내어 말한다.
이제 도서관에 가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을 대출하여 읽겠다. 굉장한 베스트셀러였지만 당시 개미는 내 관심사 밖이어서 읽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너를 만나는 입장에서, 대답 없는 너에게 말까지 건네는 입장에서, 너를 연민의 눈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입장에서, 너의 모든 것을 집대성하였으며 '그렇~게 재미도 있다'는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지.
지피지기(知彼知己) 면 백전백승(百戰百勝)! 엄연히 너와 나는 휴전 중이다.
사진출처: Plxabay
* 글을 쓰면서 갑자기 해충구제한다는 <ㅇㅇ코>가 떠올랐습니다. 왜 이제야 떠올랐을까요? 개미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지가 한두 해가 아닌데 말이죠. 의아할 일입니다.